남도일보 기고-추석

김종국<농촌진흥청 기술전문위원>

김종국 기술전문위원
올 여름은 코로나19와 더불어 역대 최고로 긴 장마,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 그리고 연이어 3개나 통과한 태풍 등으로 불안하고 안타깝게 보냈습니다. 기상청은 연일 관측기록을 다시 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추분(秋分)이 지나자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것이 대자연의 섭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가을은 또 우리 곁으로 깊숙이 들어섰습니다. 이 가을과 함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추석이란 단어에는 신비한 마력이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이 주는 풍성함과 포근함이 고향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나게 합니다. 추석은 시골 담장 위에 주렁주렁 매달린 누런 호박덩이입니다. 항상 마음 시리게 고향을 지키는 늙은 부모님입니다. 늘 눈에 밟히는 자식입니다. 추석은 소중한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나 서로 얼싸안고 안부를 묻고, 서로 격려하고 또 다른 에너지를 충전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이기 때문일 겁니다.

추석(秋夕)은 음력 팔월 보름입니다. 일 년 중 달(月)이 가장 크고 둥글게 뜹니다. 보름달이 주는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날입니다. 추석은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의미에서 중추절(仲秋節) 또는 한가위라고 부릅니다. 추석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입니다. “가을 달빛이 가장 아름다운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명절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추석 때는 오곡이 익어가는 풍요로운 시기입니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에 한 해 농사에서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추석은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추석만큼 먹거리가 풍족한 날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까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추석 때처럼 늘 풍족한 삶을 바라는 조상님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추석 명절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도시건 농촌이건, 어른이건 어린이건 마음만은 분주해지는 때입니다. 삶이 힘들고 고단하고 지칠 때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며 포근하게 감싸주는 건 바로 고향이고 가족이기 때문일 겁니다. 추석이면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들을 찾아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우리들의 아름다운 풍속입니다. 추석날 아침에는 햅쌀로 밥을 짓고 술을 빚으며,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듭니다. 또 사과·배·감 등 햇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님께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를 마치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성묘(省墓)를 하며 가족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고 풍성한 결실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올해 추석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명절이 될 것 같습니다. 정부는 추석 연휴 때 예전처럼 대규모로 이동하면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가 클 거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명절이면 면제해 주던 고속도로 통행료를 유료화하였습니다. 그리고 벌초 대행이나 온라인으로 성묘나 차례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들은 “방문 대신 전화로 인사를 나누면 코로나19가 도망가고 효심은 깊어집니다”라는 휴대전화 문자를 공공연히 보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전국에 역병이 발생하면 모임 금지, 외지인 출입금지 등 사람이 모이는 걸 최대한 통제하는 사회적거리두기가 유일한 예방법이자 치료법이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19 대처법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고령일수록 사망률 수치가 높으니 고향에 오면 불효자라는 게 빈말이 아닌 듯합니다. 이번 추석에는 코로나19로 고향을 찾지 못하고 차례를 지내지 못할 것 같으니 각 가정에 간소하게 차례상을 차려야겠습니다. 그리고 뵙지 못한 그리운 부모님과 친지, 이웃들과는 더 깊은 사랑을 나눌 시간적 공간을 연장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참된 효도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정성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