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안가고 일터에서 ‘구슬땀’…이들 덕에 즐거운 명절

고향 안가고 일터에서 ‘구슬땀’…이들 덕에 즐거운 명절
<코로나19 극복 연휴를 잊은 사람들>
선별진료소 근무자들 명절연휴 반납, 국가지정 음압병상 의료진들 땀방울
지역민들 위해 이구동성 “힘내겠다” ‘비대면’으로 코로나 확산 예방 강조

민족의 최대의 명절인 추석에도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땀 흘리는 이들이 있다. 사진은 최근 광주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 의료진들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위해 검체를 채취하는 모습.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에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19 예방 등 국민의 안전을 위해 선별진료소와 국가지정 음압병상 등에서 땀 흘리는 이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이번 명절 연휴 기간보다 연휴 이후를 더 걱정하고 있다. 연휴 이후 혹시 있을지도 모를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 방역 최일선에서 이웃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4명으로부터 추석 명절과 가족, 코로나19,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비대면 가족 소통으로 코로나 극복해요
김흔 전남대병원 감염내과 병동 책임간호사

김흔 간호사.

저는 전남대학교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지 올해로 18년차인 감염내과 병동 책임간호사 김흔입니다. 이곳 감염내과 병동은 제가 늦둥이 셋째딸을 낳고 2년 육아 휴직 후 첫 복직한 근무지입니다. 올해 5월 복귀 후 첫 근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광주·전남은 비교적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인식될 정도로 확진자 수가 적은 편이었는데도 주변 지인들과 특히 가족들이 하필이면 코로나 환자 간호사냐며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현 시국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첫 복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감염내과 병동은 국가지정 음압치료 병상을 보유해 코로나 확진자들을 간호하고 있었고 중증 환자는 간간이 한명, 대부분 경증에서 무증상 환자가 포함된 코로나 감염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7, 8월 우리지역에서 코로나 감염 환자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가용 병상 수가 부족하기에 이르렀고 전남대병원은 중증환자 치료에 매진하기로 해 경증이나 무증상 환자는 전원시키고 9월 말 현재까지도 중증환자 치료를 도맡고 있습니다. 중증환자들은 대부분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성상 폐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산소 요구량이 하루 사이에도 크게 증가되기 때문에 심하게는 기도삽관을 통해 인공호흡기를 달게 되고 그것으로도 안되면 최후의 보루인 에크모(체외산소막장치), 즉 인공 심폐기를 삽입하게 되는데 지금 현재 병동에도 에크모를 달고 있는 환자가 있어 늘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장기화될수록 이런 중증환자는 늘어나는데 비해 이에 따른 전문 의료 인력과 의료 환경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보니 매일 매일 우리 의료진들은 소진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이제 곧 우리민족 최대 명절의 하나인 추석을 앞두고 들뜬 마음보다는 추석이 지난 후 늘어났을지 모를 확진자 수 걱정에 긴장을 놓지 못하는 현실이 참 씁쓸합니다. 요양병원 감염자 확산이 심했을 때 90세가 넘은 고령의 할머니 환자가 음압병실에서 치료를 했지만 끝내 사망했던 그 날의 기억이 문득 떠오르네요. 백년 가까운 오랜 삶과의 작별을 코로나 감염자라는 이유로 가족들의 손 한번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마감했다는 인계 내용을 듣고 왠지 모를 애통함에 내내 눈물을 닦아내며 일했던 기억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립니다.

그 분도 누군가의 어머니, 할머니였고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당장 보고싶은 가족을 못본다는 아쉬움이 정말 큰 문제가 될까요? 대신 건강한 표정과 활기찬 목소리로 평소 자주 못 본 가족들에게 영상 통화를 하는 건 어떨지요. 서로의 건강을 바라고 안부를 묻는 ‘현명한 비대면 가족 소통법’이 널리 퍼지는 이번 한가위가 되기를 진심으로 추천하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해 이맘때 사진 속에 있는 평범하지만 소중했던 우리들의 일상이 하루 빨리 우리 곁에 찾아올 그날을 위해 저도 세 아이의 엄마이자 간호사로서 다시 한번 힘을 내보겠습니다.

◇비대면으로 ‘마음이’ 따뜻한 추석
홍지석 광주북부소방서 문흥119안전센터 반장

홍지석 반장

저는 올해로 4년째 광주북부소방서 문흥119안전센터에서 재직 중인 홍지석 반장입니다. 제 근무지인 119안전센터는 소방서 산하 조직으로 화재 진압, 구급 활동, 소방행정 등 소방 전반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불편을 덜어드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원래 명칭은 소방파출소였지만 2000년대부터 명칭이 바뀌어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종종 헷갈려 하시기도 합니다.

소방관으로 임관한 뒤 추석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시는 몇몇 어르신들 때문이죠. 이 어르신들은 항상 센터로 전화해 “마음이 아프다”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저희 직원들 사이에선 ‘마음이 어르신’이라고도 부릅니다.

마음이 어르신들에겐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명절 때 함께할 마땅한 가족이 없으십니다. 이에 대한 사연은 각 어르신들마다 다릅니다. 배우자가 사별한데다가 독립한 자녀들마저 찾아오지 않은 경우,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족과 연락이 단절된 경우 등 다양합니다.

그 중 기억에 남았던 사연은 평생을 홀로 보내신 어르신입니다. 고아로 지내신 트라우마 때문에 행여 ‘자식이 자신과 같은 삶은 살진 않을까’란 걱정에 가정을 이루지 못하셨고 이로 인해 다가오는 좋은 인연조차 밀어내셨습니다. 결국 연세 60을 넘기도록 혼자 지내게 되셨는데, 이제 경제적으로는 충분하지만 그것을 나눌 가족이 없어 외로워 하셨습니다. 저희에게 전화하실 때엔 대체로 취해계셨는데 취기에 섞여 하시는 “마음이 아파”라는 말이 참 먹먹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르신을 찾아 뵙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추석철이면 긴급 출동이 잦아 짧으면 10여 분, 길면 1시간여 대화를 합니다. 일상 얘기부터 내면 깊은 이야기까지 한참을 대화하다 보면 어르신 얼굴이 많이 편안해지시는걸 느낍니다. 특히 대화를 마칠 때면 손을 잡으며 하시는 “참 고맙다”는 말씀이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소방관으로서 정말 뿌듯한 순간이죠. 어르신도 저희에게 힘을 얻어 가지시만 저희 또한 어르신에게 기운을 받아가는 겁니다.

올해는 장기화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많은 어르신들이 가족과 만나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더욱 무겁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모두를 위해 영상통화 등을 통한 비대면 추석을 보내시길 당부드립니다. 코로나 감염증이 안정세에 접어든 현 추세에 더욱더 조심해야만 진정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힘든 코로나 시대 비대면 추석으로 함께 극복해 또다른 사회적 마음이가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

◇코로나19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박희경 광주광역시 서구보건소 감염병 관리팀장

박희경 팀장

‘벌교 큰며느리’라고 불리는 저는 광주광역시 서구 보건소에 근무하고 있는 박희경 계장(보건6급)입니다. 매년 명절마다 집안일을 책임졌지만, 이번 명절엔 광주의 코로나19 감염병을 차단하는데 팔을 걷어 붙였습니다.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중국 우한을 시작으로 대구 신천지, 해외입국자, 이태원클럽, 학교개학, 상무지구 유흥시설까지 코로나는 끊임없이 우리 지역주민 곁을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적은 감염률을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감히 저는 자신합니다. 중앙의 지침을 분석하고, 철저히 따르며 코로나19로부터 우리 지역주민을 지키기 위해 선제적 방안을 고민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철두철미했습니다. 과하게 방역에 힘을 쏟았고, 과하게 경찰과 동선을 파악했고, 과하게 자가 격리자를 관리했고, 또 과하게 검체를 채취했습니다. 어쩔 땐 하루 400명 이상의의 검체를 채취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방호복을 입은 서로를 보면 압니다. 서로가 진통제로 몸을 달래고 이미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해내며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응원하며 존경한다는 것을. 무엇이 우리를 인간의 한계에서 넘어서게 한 것일까요? 자가격리 때문에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못한 분과 함께 슬퍼했던 기억, 몇 년 동안 노력해왔던 인공수정시술 시기를 자가격리로 놓쳤다며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에 함께 가슴이 무너져 내렸던 일 등이 이를 가능케 했을 것입니다.

물론 기쁜 기억도 많습니다. 지난 2월 이후 종교집회에 간 적은 없지만 자책감과 사회에서 매장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모든 손톱을 물어뜯어버린 신천지 교육생의 마음을 꼭 보듬어서 새 출발을 하게 도왔던 일. 자가격리 상태라 급한 은행 일을 못 보는 분이 계셔서 은행직원을 설득해 안전보호복을 입히고 대응 간호사와 동행해 재산권을 지켜드렸던 일도 있었습니다.

5개월 동안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며 혹여 확진자가 될까봐 마트는 물론 그 좋아하는 사우나 한 번 안가고 심지어 큰언니 장례식에도 완전무장한 채 조카들 얼굴만 보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이렇게 집과 선별소가 전부여도, 가족에게 제대로 된 끼니한번 챙기지 못했어도 나와 우리가 이 자리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누군가의 희생을 갉아먹어야만 사라진다면 감히 그게 우리였으면 합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노하우를 쌓았고 그 긴장감을, 불안을, 수고를, 동료들의 웃음과 울음으로 푸는 법을 알았고 우리의 수고 덕에 안심하며 생활하는 지역 주민분들이 잊을 만하면 보내주는 커피 쿠폰이 주는 벅찬 감동을요.

◇홀로 어르신과 따뜻한 情 나눠요
김보화 동구 안녕봉사단 자원봉사자

김보화 자원봉사자

저는 광주 동구 안녕봉사단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김보화 입니다. 보통 아침 6시 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하는 남편을 도와 오전 일을 마친 뒤 봉사활동에 나섭니다. 한 끼도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홀로 어르신이나 거동이 불편한 취약계층을 위해 전복죽, 소고기 영양죽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있습니다.

정성껏 만든 음식들을 직접 집으로 배달하면서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챙기는 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한동네에 살면서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다가 봉사를 시작하면서 이웃들의 얼굴을 익히고 이제는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됐습니다. 생일이면 조촐하게나마 음식을 전해드리거나 뵙지 못하게 되면 전화로 축하인사를 전합니다.

이제는 어르신들이 ‘언제 올 거냐’고 먼저 물어보기도 하고 궁금해하시기도 하는데 친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겼다는 마음으로 전화도 자주 드리고 찾아뵈려고 합니다.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면 ‘나는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며 어르신들에게 좋은 점을 배우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접촉이 힘들어지고 있지만 마스크 착용과 손소독 등 위생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대면접촉을 줄이기 위해 식사 대접 대신 밑반찬을 만들어 도시락을 배달하거나 대체식품과 마스크, 손소독제 등 물품도 전달해드리고 있습니다.

또 호우 피해 등으로 비가 새 거나 도배가 망가진 가정에는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집수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장판과 도배를 새로하고, 오래된 전등을 효율이 좋은 LED로 교체하는 작업도 합니다.

8살 아들이 있어 봉사단을 갈 때마다 어르신들을 뵙고 돕곤 했지만 요즘은 코로나19로 함께 하지 못해 아이와 어르신 모두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맞아 가족과 떨어져 사는 어르신들의 외로움이 더욱 큰 시기인데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인사를 드리며 외롭지 않은 추석을 보낼 수 있도록 찾아뵐 예정입니다.
정리/이은창·정유진·김영창·김재환 기자 lec@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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