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 DNA 들여다보기

이성자(동화작가)

‘어느 마을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바로 옆에는 욕심쟁이 부자 양반이 살았다. 밭에서 일하던 이웃 마을 총각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이 나무 그늘은 내 것인데, 왜 허락도 없이 그늘에서 쉬느냐. 당장 나가거라.” 쩌렁쩌렁 다그치는 양반 등쌀에 총각은 쫓겨나고 말았다. 너무나 기가 막힌 총각은 며칠 뒤 “이 나무 그늘을 살 수 있는지요?”라고 물었다. 욕심쟁이 부자는 속으로 비웃으며 열 냥에 나무 그늘을 팔았다. 다음날부터 총각은 날마다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낮잠을 즐겼다. 해가 기울자 나무 그늘은 욕심쟁이 부자의 집 마당으로, 마루로 기울게 되고 총각도 따라서 자리를 옮겨 다녔다. 나중에는 논밭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와 그늘에서 쉬곤 하였다.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욕심쟁이 부자는 부글부글 끓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문득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가 떠올랐다.

선거 결과 개표가 끝나고 바이든 당선자가 공식 승리를 선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이 거짓 승자 행세를 한다”라며 불복 소송을 하기 시작했고, 신문 등에서는 트럼프의 어린 시절이 도마 위에 올랐다. 트럼프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무슨 수를 쓰든 경쟁자를 물리치는 ‘킬러’가 되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강해져야 한다’, ‘거짓말은 해도 된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건 나약한 것이다’라고 가르쳤단다. 트럼프의 형인 프레디는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학대에 무너졌고, 형을 제친 트럼프가 가문의 일인자가 됐다는 것이다(프레디의 딸 메리의 가족사를 다룬 책, ‘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에서). 추측하건대 트럼프 대통령의 아버지는 재산을 지키는 일 말고는 자식들의 가치관 형성에 필요한 책 같은 건 권하지 않았을 것 같다. 위의 그림책에 나오는, 나무 그림자를 팔아먹은 욕심쟁이 부자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에게서 하루 스물네 시간이라는 선물을 공평하게 부여받고 태어난다. 살면서 누가 더 시간을 늘려 활용하느냐가 성공의 열쇠가 될 터인데, 이는 독서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타인이 경험한 것들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주며, 타인이 오랜 기간을 걸쳐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짧은 시간 손쉽게 얻게도 해준다.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인생의 다양한 가르침을 책에서 얻는다. 더 나아가 보물을 캐듯 심오한 삶의 가치도 발견한다. 이것이 독서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쟁의 킬러가 되기 위해서 무조건 불복하고 증오하면 결국 자신을 외롭게 만든다는 걸 독서를 통해 미리 알게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주고자 유아 시절부터 다양한 독서를 권장한다. 독서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강조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좀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향으로 독서 토론 논술교육 및 문학 치료, 독서 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인단 투표에서 지면 백악관을 떠날 것”이라며 첫 승복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만약 끝까지 불복을 고집했더라면 대통령으로서 최악의 오명을 남겼을 것인데, 뒤늦게라도 승복의사를 밝혔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주변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불복의 DNA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각자의 가능성을 찾아내어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가르쳐야하리라. 그리하면 내재된 능력을 발휘하여 이웃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릴 것이며, 더욱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우려되는 긴장의 나날이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하니, 이럴 때일수록 온 가족이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책을 가까이 하면 어떨까. 자녀들에게 좋은 책을 권하는 일이야말로 긍정의 DNA를 물려주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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