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출신 독립운동가 2명 독립유공자 포상
이순주·문홍식 선생, 농민 생존권 투쟁
독립운동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 활동

문홍식 선생

전남 장흥문화원은 이순주(1916~1936) 선생과 문홍식(1916~1987) 선생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으면서, 현재까지 장흥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53명이다고 7일 밝혔다.

이순주 선생은 16세이던 1931년 장흥청년동맹에 가입해 동지 김옥석(용산면 인암리·2008년 독립유공자 포상), 최두용(용산면 운주리·2020년 독립유공자 포상), 고삼현(용산면 운주리·2019년 독립유공자 포상), 유재성(용산면 접정리·미포상), 문병곤(용산면 어산리·미포상) 등과 함께 비밀리에 농민야학을 하며 농민의 생존권 투쟁을 펼쳤다.

1932년 말께 이른바 ‘남면(현 용산면) 야학 사건’으로 장흥청년동맹 동지들과 일본 경찰에 체포돼 장흥경찰서에 수감됐다. 출옥 후 1933년 독립운동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해 장흥적색농민조합 청년반 책임자로 활동하던 중, 1934년 1월 체포돼 징역 1년 6월을 받고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문홍식 선생은 18세이던 1933년 이순주 선생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문 선생은 동지들인 길양수(장평면 등촌리·1990년 독립유공자 포상), 길덕동(장평면 양촌리·2020년 독립유공자 포상), 임도진(장평면 등촌리·2020년 독립유공자 포상) 선생 등과 함께 일본인 지주 및 친일 지주에 대한 소작 쟁의 활동을 펴는 한편 야학을 개설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던 중, 1934년 2월경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선생은 민족 교육을 펼치기 위해 광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 해방 후 장평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이른바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할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장흥항일독립운동사 표지. /장흥군 제공

당시 장흥의 대부분 학교 교사들은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난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활동을 펼쳤다. 선생은 여러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교장으로 퇴임한 후 1987년 장흥읍 건산리에서 별세했다.

장흥문화원은 최근 ‘문림의향 장흥역사 자원 발굴 조사’ 사업의 결과로 자료집 ‘다시 쓰는 장흥항일독립운동사 명예 회복과 진실 규명을 위하여’를 펴냈다. 장흥문화원은 이 책자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 기록하여 국가에 포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중·서부취재본부/김영창 기자 seo@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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