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나무에 흡사 ‘송편 모양’ 집 짓는 애벌레
질긴 잎맥만 남기고 잎살은 먹어치어
구멍 뚫린게 망사 같아 신기할 정도
석양무렵 배추흰나비 닮은 어른벌레
무리지어 춤추면 ‘짝짓기’신호탄

남도일보 특별기획 = 이정학의 ‘신비한 자연속으로’ <30> 황다리독나방

사진-1 황다리독나방애벌레 (2015년 5월 5일, 용추폭포)
사진-2 황다리독나방애벌레 (2015년 5월 5일, 용추폭포)
사진-3황다리독나방애벌레(2015년 5월 5일, 용추폭포)
사진-4황다리독나방애벌레 (2015년 5월 5일, 용추폭포)
사진-5 황다리독나방애벌레 (2015년 5월 5일, 용추폭포)
사진-6 황다리독나방

요즘 산 초입만 들어가 봐도 봄이 한창이다.

이른 시간에 산에 도착하면 사람은 거의 없고 자연의 소리만이 너른 공간을 가득 메운다. 새소리,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살랑거리는 바람소리까지.

겨우내 움츠렸던 나무들도 연두빛 새순을 돋우고, 꽃을 피우고, 제법 큰 잎으로 한낮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그 중 흔하게 볼수 있는 층층나무가 있다. 나무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가지가 층을 이루며 자라기 때문에 층층나무다. 올해는 모든 꽃들이 일찍 개화했는데 층층나무도 벌써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층층나무에 송편 같은 집을 짓는 애벌레가 있다.

녀석을 만나기위해 수많은 층층나무를 뒤지고 다녔지만 쉽게 만날수가 없었다. 경기도 등 중부지방에서는 흔하게 관찰되지만 이곳에선 보기가 힘들다.

2015년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이번에는 꼭 만나길 기대하며 찾은 용추폭포 가는길에 층층나무가 제법 많다. 꼼꼼이 살펴도 반달처럼 접힌 잎을 발견할 수가 없다. 오늘도 실패하나 하는 불안감이 몰려온다. 한참을 더 올라가니 커다란 가지로 온 등산로를 감싸듯 풍성한 그늘을 만들고 있는 층층나무가 보인다.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접힌 잎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드디어 정교하게 접혀 있는 잎을 발견했다. 순간 심장이 요동친다. 잎을 얼마나 정교하게 접었는지 영락없는 송편이다. 먹은 흔적은 없고 끝부분만 예리하게 잘려 있다.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슬그머니 열어본다. 탈피한지 얼마되지 않은 황다리독나방애벌레가 있다. 애벌레만 만나길 간절히 바랬는데 탈피각까지 있는 녀석을 만난 것이다. 주위를 더 살피니 여기 저기 접힌 송편이 많다.

층층나무 잎사귀 양쪽 가장자리를 바느질한 것처럼 정교하게도 만들었다. 중령 애벌레부터 거의 종령으로 보이는 녀석까지 볼수 있어서 오늘은 횡재한 날이다. 황다리독나방애벌레의 어린 새끼는 층층나무 잎의 양 귀퉁이에 있는 잎살을 갉아 먹는다. 질긴 잎맥만 남기고 잎살을 먹어 구멍이 뚫린 게 망사같다. 종령이 되면 집에서 빠져나와 잎 위에서 잎을 먹어 치운다.

황다리독나방애벌레는 오로지 층층나무나 말채나무 같은 층층나무 종류의 나뭇잎만 먹는다. 대발생하는 경우 층층나무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으나 자연의 생물은 다 존재 이유가 있다.

황다리독나방이 잎을 다 먹어치워서 층층나무가 죽었을까?

나무가 튼실하게 자라는데 영향을 줄수는 있지만 절대 자신의 밥상 나무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 나무 또한 방어물질을 내 뿜으며 생존전략을 세운다. 대표적 양수인 층층나무는 떼 지어 자라는 법이 없다. 햇볕이 받지 못하면 살지 못하기 때문에 동족간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뚝뚝 떨어져 자란다. 빨리 자라는 편이어서 주변의 나무들은 햇볕을 못 받아 거의 자라지 못한다. 그러면 온 산이 다 층층나무만 있을까?

자연에는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 층층나무를 적절히 제어하는 해결사가 바로 황다리독나방이다. 애벌레가 오로지 층층나무잎을 먹어치우기 때문에 그 나무 아래에도 햇볕이 들어 많은 다른 식물들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또한 종령이 된 녀석들은 번데기가 되니 빛을 되찾은 층층나무 아래는 다양한 생명들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어른벌레는 배추흰나비와 많이 닮았는데 층층나무 주변에서 석양 무렵 떼 지어 군무를 춘다. 짝짓기하기 위해서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다큐 제작하는 후배 감독에게 부탁해 얻은 군무 영상이 있어 자주 본다. 독자들께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

2015년 당시에는 애벌레를 채집하여 사육하지 않은 때라 번데기 등의 생태를 기록하지 못했다. 당연히 어른벌레도 볼수가 없어 김상수 작가에게 부탁하여 어른벌레 사진을 개재하였다. 더욱 발품을 팔다보면 분명 어른벌레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5월이면 우화하니 다음 달 도전해 볼 생각이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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