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의 남도일보 화요세평
‘광주’는 시대정신을 알리는 하나의 추상명사
최영태(전남대 명예교수·광주시 시민권익위원장)

19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을 지키다 산화한 윤상원 열사는 “시민들의 저항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라도 누군가가 이곳에 남아 도청을 사수하다 죽어야 합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목숨을 던졌다. 5·18 묘역에 계신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이런 5·18 광주에 대해 1994년 출간한 그의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광주는 남한의 한 지방의 지도에 표시된 작은 도시명으로서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동시대적 세계의 한 이념이 되었다’고 말했다.

“광주는 ‘광주’가 되었다. ‘사우스 코리아’의 남단의 한 점은 1980년 5월 이후 세계의 한 정신·문화적 중심으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광주’와 ‘光州’는 세계의 ‘Kwangju’가 되었고, 그 단어는 폭력과 부정에 항의하여 목숨을 바치는 민주주의적 시민의 용기와 감동적인 희생정신을 뜻하는 추상명사가 되었다.”

세계 인권선언 50주년이 되는 해인 1998년 5월 17일 광주에서 ‘아시아 인권헌장’이 선포되었다. 산지와 리야나지 아시아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아시아 인권헌장’이 광주에서 선포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광주는 “아시아인의 민주주의의 불꽃을 상징”하는 곳이며 또한 “우리가 결별하고자 하는 세계와 우리가 미래에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의 상징이다. 광주민중항쟁은 20세기 중 의미 있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루지 못한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의 경험을 상징한다”라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2011년 5·8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유네스코는 등재 이유 중 하나로 5·18민주화운동이 한국의 민주화는 물론 필리핀·태국·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올해 3월부터 광주 시민들과 정치권은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지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광주에서 시작한 미얀마 민주화 지지운동은 다시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다른 나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비효과’라는 말처럼 광주의 작은 몸짓이 미얀마와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한 큰 원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1789년 어느 날, 프랑스의 한 고유명사인 ‘빠스띠유’는 전 인류에게 새로운 시대정신을 알리는 ‘자유·평등·형제애’라는 추상명사가 되었다. 5·18과 광주 역시 20세기 후반 이래 지구상에서 발생한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사건이자 도시로서 아시아 민주화운동을 위한 이정표 역할을 행하고 있다.

광주도 사람이 사는 도시이다. 이 도시에 어찌 모순이 없겠는가. 일상적 삶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부정적 현상은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도시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도시라고 하지만 어떤 때는 특정 정당과 정치세력을 향한 지지가 거의 맹목적 수준일 때도 있다. 인물에 대한 선별력이 뛰어난 도시라고 하지만 정치적 잣대가 너무 까다로워 정작 광주 내에서는 인물을 키우지 않는 이중적 모습도 보인다.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많은 도시이다.

그런데 이런 모순과 불합리함 속에서도 광주에는 다른 도시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문제가 생기면 ‘광주가 이래도 되는가?’라는 성찰적 시간을 갖는 것이 그것이다. ‘광주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외부인의 충언도 소중한 자산이다. 광주 안과 밖의 이 성찰적 시각이 많은 모순 속에서도 광주를 ‘광주’로 만들어가고 있다.

5·18 41주년을 맞는다. 5·18의 전국화가 잘 진행되지 않는 데 대해 너무 속상해할 필요가 없다. 제주가 4·3항쟁에 대한 명예회복에 나섰을 때 광주는 5·18 진실규명작업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들과 함께 했다. 남북관계가 어려울 때면 보수와 진보가 함께 손을 잡고 평화·통일을 외쳤다. 1년 전 대구가 코로나 확진자로 큰 위기를 맞이했을 때 광주는 ‘병상 나눔’으로 응답했다. 미얀마가 군부 독재로 신음하는 모습을 보이자 광주는 과거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들과 함께하고자 했다.

이렇게 하면 된다. 그러면 이영희 교수가 말한 것처럼 ‘광주’는 계속해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알리는 하나의 추상명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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