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이영란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2022년 9월 9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96세로 서거하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1952년 영국 왕위에 오른 그녀는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 영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기에 영국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중국 역사에서도 여황제가 있으니 바로 측천무후라는 여성이다. 물론 그녀의 이름을 들은 순간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정치적 리더십을 갖춘 여성 리더라고 할 수 있다.

642년 무씨 성을 가진 14살 소녀가 당 태종(재위 626∼649)의 후궁으로 입궁을 하였고, 무미(武媚)라고 불렀다. 그녀의 당당함이 드러나는 이야기로 태종이 토번에서 공물로 받은 사나운 말을 보고는 신하들에게 이 말을 길들이는 방법에 대해 말해 보라 하였다. 말 길들이기의 고수인 태종의 말에 무미가 나서며 “제가 말을 길들일 수 있습니다. 다만 말을 길들이려면 세 가지 물건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쇠채찍, 쇠도리깨, 비수로 그 세 가지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말이 말을 듣지 않으면 쇠채찍으로 때리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쇠도리깨로 머리를 때리고, 그래도 말을 안 듣는다면 비수로 머리를 치겠다고 하였다” 이어 말하기를 “군주를 태워야 하는 말이니 말을 잘 훈련시켜 길들여 복종하도록 하지 않으면 아무리 준마라도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라 하니 태종이 감탄하였다고 한다.(자치통감)

후궁인 그녀는 중풍으로 늙어 아파 누운 당 태종의 병상을 돌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 태종을 정성스럽게 간호하는 무미의 모습에 태종의 아들인 고종이 무미를 마음에 두게 되었다. 당은 불교 국가로 황제가 죽은 후에 후궁은 절에 비구니로 들어가는데, 무미 역시 태종이 죽고 절에 들어갔다. 당 고종이 그녀를 잊지 못해 절로 그녀를 만나러 가곤 했는데, 때마침 왕황후의 부름으로 다시 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왕황후는 고종이 소숙비를 총애하자 고종에게서 그녀를 떼어놓기 위해 무미를 궁으로 다시 불러 들인 것이었다. 고종은 651년 무후를 소의로 책봉하였고, 무후는 소숙비를 제거하고 이어 왕황후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이 낳은 딸을 죽인 후 왕황후가 죽인 것처럼 누명을 씌워 왕황후까지 제거한 후 32세에 황후 자리에 올랐다. 건강이 악화된 고종을 대신하여 무후가 정치를 하였다. 683년 고종이 죽은 후 셋째 아들인 중종이 되나 곧 폐위하고, 넷째 아들 단이 예종이 오르나 무태후가 수렴청정하였다. 결국 이러한 과정에서 그녀는 황제의 꿈을 꾸게 되고, 반대파를 숙청하고 67세에 황제로 등극하였다.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년)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과거 역사가부터 근대 역사가까지 부정적이었다. 황후인 무측천을 가부장적인 사회의 시작에서 바라볼 때 탐탁치 않았던 시선으로 기록되었을 것이고 결국 그녀의 평가는 부정적이 측면만 부각되었다. 황제가 여러 후궁을 거느리거나 정치적 암투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여성이 정치적으로 관여하거나 여러 남자를 거느리는 것은 음탕함으로 치부한다는 것은 가부장제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입장이라고 해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녀에 대한 평가는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 당(唐)나라 최초 여황제 측천무후는 남자만이 황제가 될 수 있는 중국에서 여자로서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황제에 올랐다. 당 태종의 ‘정관의 치’에 이어 측천무후 다음인 당 현종의 ‘개원의 치’라는 안정된 정치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무측천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녀는 690년 주(周)라는 왕조를 세워 15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녀가 지배했던 주(周)의 가구 수는 ‘정관의 치’보다 1.5배 정도 증가하였다. 그녀가 통치하는 기간동안 농업과 잠업을 장려하여 생산력이 증가하였고, 세금과 요역 부담을 경감하여 사회적으로 안정되었다. 도덕으로 천하를 교화해 재주가 있으나 오랫동안 낮은 관직에 있는 사람은 승급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면밀하게 살피는 탁월한 정치 능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소수의 벽을 넘어선 진정한 여성 리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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