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제(남도일보 대기자)

 

김갑제 남도일보 대기자

1949년 6월 6일 오전 8시 30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서울중부경찰서 윤기병 서장은 서울 시내 각 경찰서에서 차출된 80여 명의 무장경찰을 앞세우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청사를 습격했다. 경찰들은 특경대 대원을 체포하고 강제로 무장해제를 시킨 후 친일파 관련 조사 서류와 집기들까지 강탈해 갔다. 결국 이날로 반민특위는 사실상 와해되면서 민족 반역자들의 단죄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미 체포된 친일파들도 별다른 처벌 없이 석방됐다.

이승만은 이날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1956년 6월 6일을 현충일로 제정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념하기 위한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몰군경을 추모하기 위한 날이었으며, 휴전 후 계속되는 반민특위 해체에 대한 비난의 여론을 잠재우는 게 목적이었다. 독립운동계는 미국에서 오랜 기간 살았던 이승만이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모델로 삼아 제정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는 매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열리는데,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날이다.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였던 친일 청산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가장 큰 비극은 이승만에 의한 친일파의 재등장이었다. 이때부터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계각층의 지도자는 매국노 친일파들로 채워졌다. 뿐인가. 친일 경찰과 군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는 살상을 일삼았다. 수많은 양민 학살 또한 대부분 반공을 내세운 친일파 인사들의 만행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비속어가 전국에 나돌았을 것인가. 모든 인물이 해방 전이나 후나 별로 다르지 않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는 말이다. 비통하지만 그것이 그날의 현실이었다.

조국을 팔아먹은 자, 민족을 배신하여 출세하고 치부한 사람들을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한 나라. 매국노가 판치는 가치관이 전도된 세상에서 어찌 민족정기를 얘기하고, 사회정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불행한 역사는 해방 7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의향 광주에서도 일제 때 악덕 지주이며 적극적인 친일행각을 펼쳤던 친일파를 독립운동가로 둔갑시켜 공공매체에서 홍보 중인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설명 해준다. 문제의 심각성은 ‘오매광주’, ‘광주문화공간매거진’ 등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을 비롯한 서구문화원 등 시·도민들이 신뢰하고 믿고 있는 기관 단체 홈페이지에 이 인물이 ‘독립운동가’로 둔갑되어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악덕 친일파는 누군가의 의도로 둔갑된 후 각종 매체에 인용되면서, 인터넷상에는 독립운동가이며 훌륭한 광주 인물로 도배되고 있다. 실제 광주광역시 남구청은 그 사람의 가옥을 향토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행정예고를 했다가 남도일보의 3회에 걸친 보도로 중단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요즘 광주·전남·전북에서 뜨겁게 논란 중인 가야사 문제도 그렇다. 시·도민들과 역사학자들이 정면충돌 중이다. 문화재청에서 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에 국제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면서 임나일본부의 유적을 변조했기 때문이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 논리인 ‘정한론’(征韓論)의 핵심이자 현재도 한국 재점령의 망상을 꾸고 있는 군국 세력들의 논리다.

일제는 야마토왜의 신공(神功)왕후가 서기 369년 가야를 점령해서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그 여세를 몰아 전라도 및 충청도까지 점령했다고 역사를 변조했다.

이 같은 역사관이 ‘전라도 1천 년사’에 기술되면서 호남은 때아닌 역사 논쟁으로 ‘난리굿’이 벌어지고 있다. 남원을 기문, 전북 장수를 반파, 해남을 침미다례 등으로 표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이다. 한마디로 전라도는 고대 야마토왜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이 역사서 출판에는 광주·전남·전북 시·도비 24억 원이 들어갔다. 시·도민들의 항의로 일단 출간은 연기되었지만, 우려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은 “고대 야마토왜는 가야계가 큐슈(九州)에 세웠다가 오사카 근처 나라(奈良)로 천도한 후에는 백제계가 지배했던 제후국이다. 그런데도 일본 군국 세력들과 한국 역사학자들은 거꾸로 야마토왜가 가야와 백제를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매국(賣國) 매사(賣史)에 막대한 국고를 쏟아붓는 나라,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대학 강단과 역사 관련 국가기관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한탄하고 있다.

“일본은 없는 역사를 만들어 내고, 한국은 있는 역사도 버리고, 중국은 남이 버린 역사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자조적 농담이 떠도는 현실. 과연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있는 일인가. 지금도 역사 왜곡이 판치는 의향 광주, 그리고 대한민국. 언제까지 이 같은 비극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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