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제(남도일보 대기자)

 

김갑제 남도일보 대기자

중인이었지만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知中樞)까지 올랐던 조선후기 한양갑부 김근행은 오랜 세월 권력자들 곁에서 살다간 관록 있는 역관(통역관)이었다. 그가 늙어 병들어 눕자 젊은 역관 한명이 죽을 때까지 받들어 지켜야할 가르침을 청했다.

그가 말했다. “틀림없이 망하고 말 집안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하네. 잘못되면 연루되어 큰 재앙을 입고야 말지”.

“필패지가(必敗之家)를 어찌 알아봅니까?” “내가 오래 살며 수많은 권력자들의 흥망을 이 두 눈으로 지켜보았지. 몇 가지 예를 들겠네. 첫째, 요직을 차지하고 앉아 말 만들기를 좋아하고, 손님을 청해 집 앞에 수레와 말이 법석대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있네. 둘째, 무뢰배나 건달같은 이득만을 챙기려는 무리를 모아다가 일의 향방을 따지고 이문이나 취하려는 자 치고 오래가는 것을 못 보았지. 셋째,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점쟁이나 잡술가(雜術家)를 청해 다가 공사 간에 길흉 묻기를 좋아하는 자도 틀림없이 망하고 마네.

■점쟁이나 잡술가를 좋아하면

넷째, 공연히 백성을 사랑하고 아랫사람들을 예우한다는 명예를 얻고 싶어 거짓으로 말과 행실을 꾸며 선비인체 하는 자도 안 되네. 다섯째, 이것저것 서로 엮어 아침의 말과 낮의 행동이 다른 자는 근처에도 가지 말게. 여섯째, 으슥한 곳에서 서로 작당하여 사대부와 사귀기를 좋아하는 자도 안 되네. 일곱째, 언제나 윗자리를 앉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도 꼭 망하게 되어 있네. 그가 한번 넘어지면 큰 재앙이 뒤따르지. 특히 기억하게나, 다른 사람이 자네를 누구의 사람이라고 손꼽아 말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네.

송천필담(松泉筆談)에 나오는 얘기다. 하지만 400여 년 전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행실이 얼마나 다를까? 줄을 잘서야 돈과 출세가 보장되는 세태(世態). 지금 이 21세기 첨단의 시대에도 자기가 누구의 사람이라고 불리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은 천근(千斤)이 된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개인의 축재(蓄財), 출세(出世)를 넘어서 편당이 되고 편당이 나뉘면 반드시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역사도 편당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동인과 서인이 나눠지자 기축년 옥사가 일어났고, 남인과 북인이 갈리면서 북인은 마침내 큰 살육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노론과 소론이 나뉘고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이 갈라서자 서로 죽이고 치는 계교를 일삼아 온 세상이 어두움 속에서 몸부림 쳐야 했다. 출세하려면 줄을 서야하고 그렇게 나뉜 편당이 세상을 얼마나 어지럽히고 험하게 하는지를 역사는 말해주건만, 그 때와 다름없는 작금의 세태는 대책 없이 흘러만 간다.

500년 전의 고사(古事)도 소름이 돋을 만큼 현세와 닮았다. 1529년, 중종의 정국 운영이 난맥상을 빚자 대사간 원계채 등이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문은 이렇게 시작됐다. “나라 일이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상황인데도 임금이 끝내 깨닫지 못하면 큰 근심을 자초한다. 임금이 통치의 근본은 잊은 채 자질구레한 일이나 살피고, 번잡한 형식과 세세한 절목은 따지면서 큰 기강을 잡는 일에 산만하면, 법령이 해이해지고 질서가 비속해진다. 밝은 선비가 바른 말로 진언해도 듣지 않다가 큰 일이 닥쳐서야 비로소 후회한다. 이는 고금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토붕의 경우는 손쓸 방법이 없다

상소문은 이어 “전하는 즉위 초에는 정성으로 덕을 닦고, 세운 뜻도 굳었다. 하지만 근년에는 일마다 고식적인 것을 따르고, 구차한 것이 많다. 본원(本源·근본)이 한번 가려지면 백가지 일이 다 그릇되고 만다. 전하께서 엄하게 다스리려 해도 요행으로 은혜를 얻은 자들이 인척의 힘을 빌어 못된 짓을 한다. 또 간언을 올리면 성내는 뜻을 드러내므로 진언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 이틈을 타 인연을 맺은 무리들이 요행을 바라는 버릇을 더욱 제멋대로 행하니, 이래서야 나라 꼴이 되겠는가”.

토붕와해는 흙, 즉 지반이 무너져 기와가 다 깨진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토붕은 백성이 곤궁한데도 임금이 구휼(救恤)하지 않고, 아래에서 원망하는데도 위에서 이를 모르며, 세상이 어지러운데도 정사가 바로 서지 않아, 나라가 어느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는 의미다. 와해는 권력자가 위엄과 재력을 갖추고도 제 힘을 믿고 제 욕심만 채우려다 제풀에 꺾여 자멸하고 만다는 말이다.

그렇다. 지반이 무너지거나 구들장이 꺼지면, 지붕마저 내려 앉아 기왓장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하지만 지반이 탄탄한데 지붕이 주저앉는 경우는 드물다. 근본과 기강이 서고 백성이 제 자리를 잡고 있다면 와해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바닥이 통째로 주저앉는 토붕의 경우는 손 쓸 방법이 없다. 집이 무너져 가는데 문패나 바꿔 다는 미봉책(彌縫策)이나, 위기의 본질을 외면한 채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고식지계(姑息之計:당장에 편한 것만 택하는 계책)로는 상황을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자신만이 정의라는 확신으로 오늘을 사는 지도자들에게 묻는다. 지금이 토붕의 위기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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