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영(남도일보 교육문화체육부장)

 

정세영 남도일보 교육문화체육부장

2015년 5월, 내리쬐는 햇볕마저 강렬한 초여름이었다. 물의 도시이자 낭만의 도시, 예술의 도시 베니스가 나에게 왔다.

운이 좋게도 필자에게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예술에 대한 좁은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자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회고한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접하기 전, 현대미술은 모호한 해석이 난무하는 일종의 기호학과 같았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한 탓에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생각도, 광주폴리에 대한 시각도 상당히 편협했다. 뿌리는 광주지만 시민들에게 공감받지 못하고 대중성을 갖지 못한 ‘그들만의 리그’랄까.

부정적 편견과 한국을 떠난다는 설렘을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광주비엔날레 관계자와 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인 박양우 대표도 함께였다.

긴 여정이었지만 여독이 씻겨 내려갈 만큼, 베니스의 초여름은 아름다웠다. 햇볕에 반짝이는 바닷물의 눈부심, 물길을 타고 흐르는 곤돌라의 유연함,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산마르코 광장의 분주함까지. 영화같은 풍광이었지만 5월의 주연은 단연 베니스 비엔날레였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시즌에는 도시 전체가 전시장이었고 곳곳에서 열린 전시 리셉션은 전 세계 미술인들의 교류의 장이었다.

도착한 첫 날부터 사흘 연속 이어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 관람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본전시장에 전시된 53개국 136명 작가의 혼이 깃든 작품들, 카스텔로 공원을 주축으로 열리는 국가관 전시는 한국을 비롯한 89개국이 참여해 자국 미술의 우위를 뽐냈다.

카스텔로 공원 내 들어서지 못한 일부 국가관 전시를 보기 위해 수상택시를 타고 다른 섬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베니스는 필자에게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더 높여줬고 작가들과 큐레이터 간 자연스레 맺어지는 교감 속에 무르익는 예술적 비즈니스의 속살을 드러냈다. 관계의 중요성을 타고 흐르는 예술적 연대, 그에 따른 전시 제안을 리셉션 장에서 관찰할 수 있었고 농도 깊고 수준 높은 작품들의 향연은 ‘현대미술’이 가진 매력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하지만 베니스에서의 가장 중요한 수확은 따로 있었다. 바로 ‘광주비엔날레’의 위상을 타국, 그것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이자 전세계 미술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 베니스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광주비엔날레는 그 해, 창설 20년 만에 새로운 CI(Corporate Identity)를 선보였는데, 새 CI가 새겨진 에코백을 들고 광주비엔날레 관계자들이 산마르코 광장을 지나치자 외국 작가로 추정되는 이들이 말을 걸어왔다. 광주비엔날레의 바뀐 CI가 맞는 지, 에코백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지 등을 물었다.

‘탯자리’인 광주에서는 그저 지역 행사로 바라봤던 광주비엔날레가 가진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뿐 아니다. 2015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오쿠이 엔위저는 2008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으며 그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와 특별전 참여 작가들도 광주비엔날레 출신이 다수였다. 본전시에 참여한 임흥순, 남화연, 김아영 작가 중 임흥순, 남화연 작가는 광주비엔날레 출신 작가다. 특별전에는 광주비엔날레 출신 이매리·이이남 작가가 함께했다. 현대미술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국가관 전시에서 한국관 참여 작가로 이름을 올린 문경원·전준호 작가도 ‘2012 광주비엔날레 눈 예술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이들이다.

특히 ‘위로공단’을 선보인 임흥순 작가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본전시)에서 국내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한국 미술을 전세계에 알렸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모퉁이 바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던 한국인 작가의 역습으로 기억한다.

2015년 5월 베니스의 여정은 필자에겐 잊지 못한 순간을 안겼다.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한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데 드는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계의 움직임. 2015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주한 광주비엔날레의 명성과 영광은 지금도 ‘안녕’할까.

문득 궁금해져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장과 파빌리온 전시를 둘러봤다. 개막 전 소시지 홍보 논란부터 개막 이후 박서보 예술상 반발에 이르기까지. 곡절도 많았지만 코로나19의 터널을 뚫고 시작된 전시는 꿋꿋이 진행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눈여겨 본 국가관 개념을 따온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반가운 전시였다. 광주비엔날레의 정체성을 던진 채 베니스 비엔날레의 시그니처 전시를 표방했단 우려와 각 국의 문화대사관으로 예술 교류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교차하지만 시도는 또다른 변화의 꿈틀거림이라는 데서 긍정의 한표를 주고 싶다.

어느덧 중반으로 접어든 전시. 광주비엔날레가 지닌 전세계적 위상과 가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이번 주말 광주로 오시라.

초여름의 내리쬐는 햇볕처럼 강렬한 기억을 심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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