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폴애드 대표 컨설턴트)

 

김형주 폴애드 대표 컨설턴트
김형주 폴애드 대표 컨설턴트

‘충성스러운 반대(loyal opposition)’라는 말은 1826년 영국 의회에서 열린 토론에서 존 홉하우스(John Hobhouse)에 의해 만들어졌다. 신하들이 왕에게 충성하면서도 왕의 정부는 반대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완강히 주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정치적인 관습이다. 현대 영국 정계는 크게 보수당과 노동당으로 양분되어 있는데 여당은 ‘Her Majesty’s Government’ , 제1야당을 ‘Her Majesty’s most loyal opposition’이라 한다. ‘폐하의 가장 충성스러운 반대파’가 야당이다. 군주나 헌법과 같은 정부 권력의 공식적인 원천에 충성을 유지하면서 현직 내각의 행동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충성스러운 반대’의 개념과 비슷한 ‘격군(格君)’이 있다. ‘격군’은 임금이 바른길을 가도록 하고 임금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는 책무였다. 조선 중종 때 ‘정광필’(1462~1538)은 중종이 공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무시한 채 음모를 꾸며 ‘조광조’ 등을 숙청하려 하자 연일 중종에게 극간(極諫·임금이나 웃어른에게 잘못된 일이나 행동을 고치도록 온 힘을 다하여 말함)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조광조’의 급진적인 개혁에 못마땅한 중종이 ‘조광조’에게 사사를 내리자, 그 누구 하나 ‘조광조’를 엄호하지 않아도 ‘정광필’만은 왕을 위한 개혁을 추진한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릴 순 없다며 충언을 했다. ‘충성스러운 반대’를 한 것이다.

세종대왕은 ‘충성스러운 반대(파)’를 중용했다. 세종은 자신의 결정에 반대하고 소수의견을 내는 것이 일상인 인물이었던 ‘허조’(1369~1439)를 무려 6년간 이조판서로 기용해 인사 검증절차 운영과 과거시험 보완 등을 맡겼다. 임금이 사초(史草)와 실록을 열람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을 확립한 인물이었던 ‘신개’(1374~1446)에게는 도리어 실록을 편찬 관리하는 춘추관(春秋館)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아무리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더라도 역사기록, 편찬에 있어서 ‘신개’만한 전문가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금의 원수’라고 불렸던 ‘황희’에게는 19년간이나 영의정을 맡겼다. 이렇듯 세종대왕은 왕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충성스러운 반대’ 신하를 중용했다. 그런 신하가 더 꼼꼼하게 살피고 문제점을 보완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세종을 우리는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평가한다.

‘충성스러운 반대’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기도 하다.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사람인 ‘악마의 변호인’처럼, ‘충성스러운 반대’를 통해 자신의 결정에 문제점이 있는지 점검할 수 있고 집단화된 사고의 함정에 빠져 맹목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충성스러운 반대’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충성을 위한 비판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지, 충성스러운 비판과 반대를 하는지, 지도자는 알고 있다.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우리 주변의 대부분 지도자는 지적과 쓴소리보다는 달콤한 입에 발린 소리에 반응한다. ‘사탕발림’, ‘입발림’처럼 자신을 지지해주는 소리가 당장 좋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소리에 둘러싸여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일방적이고 편협해진 결정을 하게 된다. ‘자신만이 맞다’라는 비합리적 사고로도 이어진다. 이런 지도자는 금세 국민과 멀어지게 된다. 국민의 목소리가 아니라 소위 친위대의 목소리만 듣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우리 주변은 어떤가. ‘엽관제 채용’, ‘캠프 보은 인사’를 지적하며 규탄의 목소리도, ‘퇴직 간부 낙하산 선임’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듣기 싫은 쓴소리일지라도 왜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지 지도자는 다시금 냉철히 살펴봐야 한다. 내부의 목소리가 한쪽으로 쏠리지는 않았는지, 행정과 인사시스템을 재점검해보시길 권한다. 제대로 된 정치, 시민을 위한 행정 해보겠다고 시민께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러기 위해선 ‘충성스러운 반대파’가 중용되고 의사결정과정에서 ‘충성스러운 반대’가 작동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른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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