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호(목포과학대학교 겸임교수)

 

전동호 목포과학대학교 겸임교수

가을이 하나 둘 물들어간다. 유달산(儒達山)에도 들었다. 하얀 은목서 향이 더하더니, 그 아래 털머위가 노랗게 또 피어났다. 은행알이 뚝뚝 바닥을 적시고 토복령(土茯笭) 맹감은 빨강 열매를 달았다. 비탈 밭의 배추는 속을 차올리고 마늘잎은 쑥쑥 파릇해졌다. 꽃망울이 맺힌 동백도 보인다. 겨울이 오면 붉은빛 노랑꽃술을 활짝 내놓을 채비다.

이른 아침 나의 유달산 길도 익어간다. 이슬이 쌓인 노적봉(露積峯)에서 출발한다. 돌계단, 너덜바위, 솔밭과 들샘을 돌아온다. 빗속의 더덕 향에 취하기도 하며 그렇게 세 계절을 보냈다. 깡마른 성수는 삼십년이 넘었다. 이리저리 방향만 바꾸어도 전혀 새롭다며 낙엽 밟는 소리, 새하얀 눈, 봄 개나리와 땡볕까지 즐겼다.

유달산은 마치 돛배를 닮았다. 사방을 가르며 우둑하다. 해발 228m 일등봉이 최고임에도 삼학도, 임압산, 양을산, 고하도와 영암, 해남, 신안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영산강도 같은 물길이었지만 1981년 하구둑에 막히며 찻길로 변했다. 그리고 2008년 압해대교, 2012년 목포대교, 2019년 1004대교와 해상케이블카로 이어졌다.

유달산은 요즘 전국적으로 한번쯤 와보고 싶은 곳이 됐다. 새벽부터 해름까지 분주하다. 3.23㎞ 해상케이블카는 필수 코스다. 눈을 감아도 아찔한 비경이다. 국내 육지면 시배지인 고하도 바다를 건너면, 해안 데크길에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게 된다. 1597년 9월 16일 명량대첩 후 108일 동안 삼도수군통제영이었던 역사를 잊지 말라며 가리키고 있다.

유달산은 시가지 근현대문화와 이어져있다. 예향의 뿌리 목원동, 차범석의 희곡 옥단어 물장수와 바람에 피는 꽃 박화성, 파트너 남진의 학창시절이 있다. 그리고 현해탄에서 윤심덕과 함께 했던 김우진의 옛터, 오포대, 1900년에 지은 일본영사관, 성심소학교강당,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과 그 시절 그 거리까지 그대로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는 삼학도 또한 얼마 아니다. 이난영 수목장과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있고, 천연기념물 제500호 갓바위까지 이어진다. 그 길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자연사박물관, 생활도자기박물관, 남농기념관, 목포문학관, 문예역사관, 옥공예전시관 등이 즐비하다. 찾는 이는 많지 않다. 세상 어디에 이런 데가 또 있을까 싶다.

유달산의 유는 예초에 놋쇠 유(鍮)를 썼다. 동녘 해가 비추면 쇠가 녹아내린 듯 보인다는 의미다. 1907년 가을에 선비 유(儒)로 바뀐다. 무정 정만조(1858~1936)가 진도 금갑도 12년 유배를 마치고, 여기 시화전에 들려 유달정(儒達亭) 건립을 논의하면서다. 그런 연유인지, 오늘날 목포시사(詩社)에 가면 그의 영정이 걸려있다.

유달산을 품은 목포는 예부터 항구였다. 바다로 들어가는 외나무다리처럼 길고 홀쭉한 땅이라는 1861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풀이다. 개항은 1897년 10월 1일 대한제국에서 했지만 목포진(木浦鎭)은 600년이 넘었다. 신안, 무안과는 한 집안이었다. 1910년 목포부와 1949년 목포시, 1969년에 신안군이 새 무안으로 출발했다.

이렇게 유달산에 녹아 있는 우리의 역사가 끝이 없다. 그 안에, 가을이 지며 짝을 찾아 갈 큰 아이와의 추억을 넣고 친구들과 일박이일도 나누었다. 저녁은 신푸른바다와 달꾸메 게스트하우스, 다음 아침은 만인살롱에서 했다. 매일 해오름이 51.5초씩 변하는 이치와 이난영 노래비의 ‘목포의 눈물’소리가 점점 늘어진다는 것도 알렸다.

그리고 일기를 썼다. 본대로, 느낀 대로, 공유도 했다. 내 생각과 말, 내 모든 것이 되게 했다. 쓴 소리는 아니라면서 지적도 했다. 시설물이 불편하지 않고 바른 글자가 되기를 원했다. 좋은 글, 혹하는 글, 팔리는 글은 아닐지라도 멈추지 않았다. 도전이 일상이 됐다. 그 글이 버려지고 휴지가 되는 걸 원치 않는 욕심도 부렸다.

오늘도 이른 유달산에서 시작한다. 말이 시가 되고 바람이 그림이 된다. 목포해양대학교의 기상과 함성도 비친다. 해오름, 석양, 달무리와 별빛까지 더해온다. 채근하지 않는다. 희망이 된다. 내일도 갈 거다. 또 무슨 일기가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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