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조대감이 묵묵히 윤처사를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 올곧은 선비라! 옳은 말씀이시네! ‘5두미(五斗米)의 녹봉(綠峯)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시찰 나오는 향리(鄕吏)의 소인(小人)에게 절을 해야 하느냐?’고 말하고는 80일간의 평택현 현령 자리를 도연명 선생이 곧바로 때려 치워버리고 낙향(落鄕)하며 쓴 시가 바로 그 유명한 귀거래사 아닌가!”

조대감이 맞장구치며 말했다. 취기(醉氣)가 성큼 오른 얼굴의 윤처사가 지그시 눈을 감더니 또 한 수의 시를 읊조리는 것이었다.

사람으로 살아오는 동안(自余爲人)

가난한 운수에 매여서(逢運之貧)

밥도 국물도 배불리 못 먹고(簞瓢屢磬)

겨울에도 베옷으로 떨어야 했네(치격冬陳),

나뭇짐 지고 가며 노래하고(行歌負薪),

들에 나가 부지런히 일하고(有務中園)

철 따라 김매고 북돋우며(載耘載자)

길러 거두어들였네(耐育耐繁),

하지만 나는 홀로 고매하게(嗟我獨邁)

평생을 속인들과 다르게 살면서(曾是異玆)

총애를 영광으로 여기지도 않았고(寵非己榮)

속세에 물들어 타락하지도 않았네(涅豈吾緇)

나는 의연하게 궁색한 초가에서(拙兀窮廬)

술을 즐기고 시를 지었네(함飮賦詩),

흙으로 돌아가 흙이 되어 사라지고(廓兮已滅)

사람들 기억 속에서도 사라질지니(慨焉已遐)

내 무덤엔 봉분도 나무도 없이(不封不樹)

해와 달 지나가리니(日月遂過)

살아서 명리 찾지 않았거늘(匪貴前譽)

죽은 후엔들 누가 칭송하며 기억하리(孰重後歌)

인생살이 참으로 고달팠거늘(人生寔難)

사후의 세계는 또한 어떨는지(死如之何)

윤처사가 읊조린 것은 다름 아닌 도연명 선생이 61세 죽음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 자신이 자신의 제사를 지내는 글을 지은 바로 그 자제문(自祭文)의 일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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