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을 붙여 풍선처럼 만들고 겨울을 나는…
가장자리 속에서 왁스층·잎살 먹고 생존
먹이 없거나 위협 받으면 구멍 뚫고 도피
6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유충으로 동면
다른 애벌레 번데기·흙속에서 생활과 대조

사진-1 신갈애기잎말이나방애벌레(2018년 8월11일, 덕산계곡)
사진-2 신갈애기잎말이나방애벌레(2018년 8월11일, 덕산계곡)
사진-3 신갈애기잎말이나방애벌레(2021년 9월22일, 삼봉산)
사진-4 신갈애기잎말이나방애벌레(2021년 9월22일, 삼봉산)
사진-5 신갈애기잎말이나방애벌레(2018년 8월21일, 뱀사골)
사진-6 신갈애기잎말이나방(2014년 5월17일, 불태산)

올 겨울 들어 두 번째 추위가 찾아오고 있다. 기후변화로 겨울이 겨울같지 않고 계속되는 가뭄으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 걱정이다. 우리의 식수원인 동복댐의 저수율이 30% 이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안내문자를 접할때마다 지금껏 우리가 자연을 너무 소흘히 대해 왔다는 자괴감이 든다. 인간도, 자연의 모든 동·식물들도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왔건만 적응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다. 조금만 기온이 내려가도 춥게 느껴지는건 비록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은신처를 만들어 그 속에서 먹고 살아가는 나방 애벌레들이 많음은 이미 알고 있으리라. 잎말이나방과(Tortricidae)의 애벌레들이다. 그중 애기잎말이나방아과(Olethreutinae)의 신갈애기잎말이나방을 소개하려 한다.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잎을 완전히 붙여서 풍선처럼 만들고 있는 녀석이 있다. 잎을 주맥을 중심으로 세로로 접어 가장자리를 완전히 붙인다. 그 속에서 왁스층과 잎살의 일부를 먹고 산다. 먹이가 없거나 위협을 받으면 구멍을 뚫고 나와 다른 잎으로 옮겨간다.

2018년 8월11일, 장수군 덕산계곡에서 신갈애기잎말이나방 애벌레를 만났다. 완전히 붙인 잎을 열어보니 앙증맞은 애벌레 한 마리가 있다. 가장자리를 붙인 흔적이 선명하게 보이고 왁스층과 잎살을 먹은 자국이 잘 보인다. 10일 뒤인 21일 뱀사골에서 다시 녀석을 만났다. 역시 잎을 잘 붙여 놓았다. 옮겨온지 얼마되지 않은 듯 먹은 흔적은 거의 없다. 녀석에겐 미안한 마음이지만 다시 잎을 붙이고 열심히 먹을 것이다. 은신처를 발견하고 열어 볼 때는 꼭 이런 마음이 든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애써 미안한 마음을 누른다.

2021년 9월 21일, 함양 오도재를 다시 찾았다. 전날 임도길을 돌며 가을에 볼 수 있는 애벌레를 찾아 보았지만 별로 보이는 녀석이 없다. 지인의 차량 지붕에 설치된 텐트에서 1박을 하고 평소 오르고 싶었던 삼봉산 등반에 나섰다. 한참을 오르다 녀석을 다시 만났다. 잎을 단단히 붙이고 있다. 다른 애벌레가 아닐까 했지만 역시 신갈애기잎말이나방 애벌레다. 녀석은 6월에서부터 다음해 3월까지 관찰이 가능한데 붙인 잎 속에서 유충으로 추운 겨울을 난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애벌레의 길이는 13㎜정도니 크기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많은 애벌레들은 추운 겨울을 번데기 상태로 나는 경우가 많다. 잎을 붙이거나 흙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봄 우화하거나 아니면 겨울이 되기 전 우화하여 짝짓기를 하고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신갈나무잎말이나방처럼 먹이식물의 잎을 말고 그 속에서 겨울을 나는 애벌레도 많이 있다. 겨울산행의 또 다른 매력이다. 나무들의 겨울눈을 보며 동정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이렇게 겨울을 나는 애벌레를 찾아 보는 기쁨도 정말 좋다.

신갈애기잎말이나방의 어른벌레는 어떻게 생겼을까? 애벌레를 만나기 훨씬 전인 2014년 5월 17일 장성 불태산에서 신갈애기잎말이나방을 만났다. 앞날개 후연 1/3 부근에서 출발해 전연에는 미치지 못하는 암적색 무늬가 있다. 날개길이는 16~21㎜정도로 작다. 내가 만난 녀석을 심한 바람을 맞았는지 날개끝이 많이 상하고 더듬이도 한쪽이 부러지고 없다. 고단한 삶의 흔적이 보인다. 암컷인지 수컷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짝짓기하고 생을 마감하기를 빌어본다.

이제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될 것이다. 눈이 쌓이고 꽁꽁 얼어 붙어도 어딘가에는 힘겹게 살아가는 생명들이 봄을 기다리며 다음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녀석들의 흔적을 찾아 열심히 자연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들어가 본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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