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벽화·삼국사기 유적에 차문화 유래
이규보 등 명시에 남긴 품격 높은 한국차
제주양씨·원주이씨 등 종가문화로 계승
세계 트렌드 맞는 우수성…유럽 소비자 신뢰

백운동원림에서 바라본 월출산 옥판봉과 녹차밭
백운동원림에서 바라본 월출산 옥판봉과 녹차밭

보성 유기농 녹차의 유럽 수출길이 열렸다. 200년 전 선각자 정약용은 조선 차와 중국 말의 교역인 다마(茶馬)무역을 주장했다. 17~18세기 동서양의 무역은 차(茶)가 중심이었다. 중국차 직수입 독점 회사인 영국 동인도회사는 19세기 초 영국의 대중국 교역량의 90%를 점유할 정도였고, 영국은 유행하는 중국차 수요 급증에 따른 소비자 입맛을 맞추기 위해 무역적자를 불사하고 국제통화인 은(銀)을 수입해 중국에 지불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왕실문화가 대중화 되면서 여성은 차, 남성은 커피를 즐겼다. 차 무역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1776)과 중국 아편전쟁(1839, 1856)이다. 최근 식품 소재 활용 수출상품 개발이 증가하면서, 한국 가루녹차(K-MATCHA)가 국제식음료품평원(벨기에 소재) 개최 ‘2021 Superior Taste Award’(국제우수미각상)에서 세계 유수의 차를 제치고 ‘우수한 맛상’을 수상해 우리 차의 유럽 경쟁력을 입증했으며 스타벅스 69톤, 호주 9톤, 네델란드 6톤의 수출을 달성했다. 세계무대 진출에 나서고 있는 고품질 한국차의 뿌리 깊은 내력을 살펴 종가보존 문화의 가치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보성 녹차밭 전경
보성 녹차밭 전경

◇보성 유기농 녹차 독일 첫수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2년 4월 보성의 한 중소기업이 보성 유기농 녹차의 독일 수출에 성공했다. 전남농업기술원의 품질평가와 컨설팅을 통해 1천200kg을 첫 수출한 것이다. 보성군은 녹차밭과 가공공장에 대해 유럽(EU-Organic), 미국(USDA NOP), 일본(Organic JAS) 등의 국제유기인증을 획득했다. 국제유기인증은 토양, 수질, 공기 등 입지와 농자재 적합, 친환경 가공과정 등 엄격한 현지조사를 통과한 심사결과로서 보성 녹차 세계시장 진출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세계 식품시장은 2022년 7조9800억 달러 규모(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분석)로 IT시장의 2배, 자동차시장의 3배에 달하며 매년 세계시장에서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전세계 소비 트렌드는 여성의 사회진출, 1인가구 증가, 코로나 및 기후위기 생활변화 등의 영향으로 개인화, 다양화, 친환경 웰빙의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건강에 관한 관심 증가에 따라 식가공산업이 증가하는 가운데 코로나펜데믹 확산으로 면역력 증강의 우수성이 입증된 한국차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할지 관심이다.

◇한국 최초 차 상표 ‘백운옥판차’
다산 정약용(1762~1836, 호는 다산, 여유당)은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대학자다. 정조의 총애를 받아 사간원 홍문관 요직을 역임하며 수원화성 설계, 거중기와 배다리 개발했고, 천주교 박해와 더불어 전남 강진에 18년 동안 유배돼 다산서실(초당)을 짓고 정치·경제·지리·법제·경학 등에 관한 500여권의 저술(여유당전서)을 남겼다. 그는 빈혈과 중풍에 시달리면서도 인근 대둔사의 혜장스님과 교유하며 차문화에 심취했고, 백련사의 초의선사에게 유학을 가르치며 차에 관한 시 40여편을 남겼다. 그는 중국의 차세와 전매제도를 역사적으로 고찰 연구하고 차나무를 재배해 중국의 말과 바꾸면 나라살림에 큰 도움이 된다며 다마(茶馬)무역을 주장했다.

정약용의 제자 이시헌(1803~1860)은 원주이씨 병사공파 후손으로 6대조 이담로(1627~?)가 조성한 별서정원 백운동원림(명승 제115호)에 은거하며 정약용과 초의선사의 차 전통을 이었다. 그가 이덕리(1728~?)가 저술한 한국 최초 차(茶) 전문서 ‘동다기(東茶記)’를 필사해 전승했다. 그의 손자 이한영(1868~1956)은 우리 땅에서 나는 차가 일본차로 둔갑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1920년대 초 한국최초의 차 상표 ‘백운옥판차’를 반포했다. 어린잎 맥차는 정약용가문에 보내 대를 이어 신의를 지켰고, 작설, 모차, 기차를 만들었는데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상표인을 포장에 새겨 판매하며 한국차 제조법을 전승하게 됐다.
 

무용총 접객도 / 살아있는 한국사교과서 이미지캡쳐
무용총 접객도 / 살아있는 한국사교과서 이미지캡쳐

◇뿌리깊은 한국차문화 역사
우리 민족의 대명절에는 차례(茶禮)를 지낸다고 한다. 한국 차는 뿌리 깊은 역사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진주강씨 대동보의 기록에 기원전 3218년에 태어났다는 전세계 강씨의 시조 강석년은 염제 신농씨로 알려졌다. 인간세상에 농사법, 약초의술, 불 사용법, 우물, 음식조리법, 도자기 굽는 법, 옷감 짜는 법 등을 알려주고, 물물교환 시장을 발명한 문명의 아버지라고 추앙받고 있다. 70여 약초의 맛을 보고다니다가 독에 중독됐는데 찻잎을 씹어 먹어 독이 사라진 것을 보고 차의 해독 효능을 알렸다고 전해진다.김해김씨 시조인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에서 차나무를 가져왔는데(삼국유사) 경남 창녕 백운산에 심었다(조선불교통사)는 기록이 있다. 김해 동상, 대성동 등지의 차밭이 있으며, 가문에서는 제례에 차를 올렸었다고 한다. 북방 기마민족의 독특한 생활문화로서의 차문화는 고구려의 무용총, 각저총의 벽화에도 손님맞이 또는 가족 대화 풍속에 전승되고 있다. 신라의 최치원은 유학 중에 부모에게 차를 선물했다고 하며, 통일신라기 828년 김대렴이 복방계 차나무를 들여와 경남 하동에 심어 차문화 전파에 기여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불교문화와 함께 차문화가 대중화됐으며 이규보, 이색 등이 차를 애용하며 시를 남겼다. 조선 초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차문화가 선차문화로 축소되고 제례와 접빈에 차 대신 술이 애용됐으나 정약용 등 실학자들이 고대부터 이어온 민족의 차문화를 회복하는데 기여했다.

녹차 수도라는 애칭의 보성에는 430년 된 야생 녹차 ‘고차수’가 있다. 고차수와 차문화를 지킨 보성 제주양씨 학포공파 통덕랑종가, 한국차 상표로 민족문화를 지킨 강진 원주이씨 백운동종가와 같이 종가 보존의 한국차는 인삼차, 생각차, 보리차, 율무차 등 곡물차와 매실차, 유자차, 수정과 등 과일차 등으로 발전했다. 감잎차, 국화차, 뽕잎차, 솔잎차 등 웰빙에 강한 경쟁력을 가지며 변화하는 유럽 등 소비 트렌드에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개발된 가루녹차가 24개국에 누적 1천376만불을 수출해(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집계)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는 한국차의 세계화 시대는 다가오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초의선사 유물 ‘옹기 다관’ / 국립광주박물관 사진제공
초의선사 유물 ‘옹기 다관’ / 국립광주박물관 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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