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동(기상청장)

 

유희동 기상청장.

2023년은 우리가 기후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나는 해였다. 제6호 태풍 카눈은 1951년 태풍 관측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한반도를 남에서 북으로 관통했다. 또한, 2022년부터 2023년 봄까지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다가, 여름철에는 국지성 호우와 정체전선으로 인한 집중호우가 쏟아져 전국 장마철 강수량이 무려 660.2㎜를 기록했다. 이는 기상관측망이 대폭 확충된 1973년 이후 세 번째로 많은 양이다. 특히 남부지방은 712.3㎜의 많은 비가 내려 역대 장마철 강수량 1위를 기록했고, 호우로 인해 곳곳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9월 전국의 평균 기온은 22.6℃로 평년보다 2.1℃ 높은 기온을 기록해, 1973년 이후 역대 1위에 올랐다.

이렇게 기후변화가 크게 느껴졌던 2023년이 지나가고, 2024년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가 밝았다. 그리고 새해의 첫 절기인 입춘(立春, 양력 2월 4일)도 지났다. 입춘은 글자 그대로 봄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며, 추위가 점점 덜해지고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시기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입춘 때 보리 뿌리를 뽑아서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하기도 했고,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 맨 먼저 솥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곡물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믿기도 했다. 그만큼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이자 농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절기였다.

입춘과 기상청은 얼핏 생각하면 관련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24절기는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의미 있는 체계이므로, 기상청은 꾸준하게 입춘과 더불어 24절기에 대해 지역별로 관련 기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기상청은 기상자료개방포털을 통해 최근 30년의 24절기에 해당하는 기상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93년에서 2023년까지 입춘 때의 광주와 전라남도 기상 상황을 분석해보면, 2009년 전남 고흥의 일 최고기온이 15.9℃로 가장 더운 입춘으로, 2006년 전남 순천시 주암면의 일 최저기온이 -13.8℃로 가장 추운 입춘으로 기록됐다. 기온 외의 다른 기상요소를 살펴보면, 2017년 완도의 일 강수량이 7.2㎜에 달해 가장 많은 비가 내린 입춘으로 기록됐고, 2005년 광주의 최심적설량이 6.2㎝로 적설이 가장 많은 입춘으로 기록됐다. 이처럼 같은 입춘임에도 지역별·연도별로 다양한 기상 상황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기상자료들을 변화에 따라 분석하면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다가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상청은 이러한 24절기 통계 이외에도 기온분석, 강수량분석, 두 개 이상 지점의 요소를 비교할 수 있는 다중지점분석,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계속해서 많이 내리는 비인 장마에 대한 분석 등에 대한 통계분석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기상기후 자료들을 국민에게 효율적으로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편리하고 실용적인 자료들을 국민에게 쉽게 제공하기 위해 더욱 정진할 것이다.

다난했던 2023년과 춥고 길었던 겨울이 지나, 바야흐로 새봄이 오고 있다. 봄의 문턱에서 자연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이와 함께 우리의 마음에도 설렘과 희망이 돋아나고 있다. 눈이 천천히 녹으며 땅속의 씨앗이 따뜻하게 발아하는 모습이 푸른 용이 기지개를 켜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입춘에 의식과 의례 등 민속적인 행사가 많이 진행됐던 이유는 많은 이들이 작은 씨앗의 성장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연의 씨앗뿐 아니라 우리들의 염원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입춘과 함께 활기차게 2024년을 시작하면 좋겠다. 입춘을 시작으로 모두가 행복한 2024년이 되기를 바란다.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