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천(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최형천 (주)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대다수 국민들에게 지난 일년 간은 참담한 상실의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상실에 직면할 때 잠시 무력감에 빠진다. 그리고 그 원인을 일차적으로는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 한번 치렀을 뿐인데 모든 면에서 퇴행하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허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사회학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혼란으로 공동의 가치나 도덕기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개인적, 사회적 불안정 상태를 ‘아노미현상’이라 한다.

가장 큰 충격은 지난 해 이태원 할로윈축제를 즐기려고 모였던 죄 없는 젊은이들 159명을 가족으로부터 빼앗아간 10·29참사에 대한 정부의 수습과 대응 태도였다. 먼저 당국의 책임회피와 비인간적인 행태로 국민들은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를 느꼈고 아직도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있다. 위패(이름)도 영정도 없이 유가족의 반대에도 서둘러 참사를 덮으려는 당국의 처사는 애도(哀悼)의 의미를 모르는 모리배들이나 할 수 있는 짓이었다. 국가의 잘못으로 국민이 죽음을 당했다면 국정책임자는 단순한 문상객이 아니라 당연히 상주의 마음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들의 슬픔이나 고통을 외면하고 무슨 이유인지 정부는 추도식을 강행하고, 유가족을 막말로 조롱하는 패륜까지 저질렀다.

모든 상실에는 애도와 위로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사망자의 명단공개를 요구하는 가족과 국민들의 순수한 마음을 2차 가해로 몰아 협박하였다. 함께 슬픔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애도의 기회마저 빼앗는 것은 실로 잔인한 짓이다. 특히 우리의 장례문화는 유가족이 슬퍼할 수 있는 심리적 애도과정을 충분히 거치는 전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권수영 지음, 치유하는 인간, EBS, 2020)

가족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절실하게 잘 표현한 문학작품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3대 희곡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가 있다. 오이디푸스왕의 아들인 테베의 두 왕자가 왕위 계승을 놓고 싸우다가 결국 서로 죽이게 되고, 당시 왕이자 숙부였던 크레온은 외부의 적을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큰 조카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도록 엄명하였다. 하지만 두 왕자의 여동생인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큰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른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애도가 죽은 오빠의 영혼을 위해서 가족이라면 당연이 지켜야 할 윤리적 의무라고 여겼기 때문에 목숨까지 던졌던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에게 새로운 관계와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안티고네에게 있어 애도는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며 사랑의 행위였다. 애도는 인류의 보편적 정서이며 인간 존엄의 징표로서 강제력으로 억압되지 않는 근본적 에너지임을 탁월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세대를 이어 공감을 얻고 있다.

이제 코로나19 팬데믹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하지만 세계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로 인하여 두려움은 여전하다. 이런 두려움은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 비난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에 편승하여 상대적 약자를 혐오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포퓰리즘 정치가 각국에 독버섯처럼 퍼지는 것도 지구촌의 아픈 현실이다. 한국의 현 정권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의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압적 처리나 강경한 노조탄압정책 등으로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 국민들은 가정경제까지도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떨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국민들 스스로 무너진 우리 사회와 정치가 더 이상 추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인간관계든 정치계든 불행한 이웃에 대한 애도와 연대의 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 슬픔과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애도를 통한 진정한 위로와 포용으로 이웃이 함께 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두려움을 이용한 약자 때리기와 혐오의 포퓰리즘은 단호히 거부하고 타협을 통한 사회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힘없는 사람들의 외침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들의 비통함을 먼저 살펴보는 따뜻한 연대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대해야 하며, 그것이 삶의 명령이다. 무심코 쏜 화살이 나를 향해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집권자들에게도 경고한다. 소외되고 힘없는 국민을 지키지 못하면 나라가 아니다. 슬픔에 직면한 가족을 외면하는 정치는 그 무엇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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