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천(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최형천 (주)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20세기를 민주주의 시대로 이끈 대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894년 9월 프랑스 육군본부 정보국은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간첩죄로 체포·기소하였다. 그러자 보수언론들은 연일 그를 혐오스런 유태인 반역자로 매도하였다. 그는 이런 혐의를 결코 시인하지 않았지만 군사법원은 그해 12월 군적 박탈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뒤 아무도 이 판결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고 세인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새로 정보부장에 취임한 피카르 중령에 의해서 전환의 계기를 맞게 된다. 그는 범인은 따로 있으며 무고한 장교를 반역자로 몰았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사령관에게 보고했지만 묻어두라는 지시를 받는다. 강직한 군인이었던 그는 다시 국방장관에게 직접 보고했으나 역시 공정한 처리를 허락받지 못한다.

그러나 진실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드레퓌스 가족들의 확신에 찬 재심 요구와 피카르 중령의 노력, 그리고 에밀 졸라를 비롯한 프랑스 지식인과 동조한 전 세계인들의 지원은 진실을 케는데 엄청난 동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과정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드레퓌스가 결백하다는 증거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재심을 반대하는 측은 격분하여 폭동까지 일으켰다. 이 여파로 재심 반대파가 선거에 승리하면서 싸움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건을 조작한 공범이 자백 직후 자살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소상히 밝혀지게 된다. 여론도 사실을 줄곧 숨겨온 군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평범한 시민들은 항의 표시로 극장에도 가지 않았으며, 지식인들은 말과 글로 재심 반대파와 맞서 싸웠다. 그리고 두 번의 재심을 거쳐 1906년 7월 마침내 드레퓌스의 무죄가 확정되고 지위도 복권된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진실이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 냈지만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밝힌 참 군인 피카르 중령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역사적으로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와 유럽이 민주국가로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언론의 선동과 반지성주의자들의 집단 광란을 이성의 힘으로 이겨낸 프랑스 국민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체득하게 되었고, 그후 프랑스는 확고한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비록 한 세기가 지났지만 드레퓌스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최근 한국에서도 발생하였다. 지난 7월 경북 예천의 집중호우 지역에서 피해복구 작전 중 순직한 채상병 사건을 수사하던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보직해임을 당하고 오히려 항명죄로 기소되어 고초를 겪고 있다. 부하를 죽음으로 이끈 지휘관의 무책임과 무능을 밝히고자 했던 그는 외압에도 불구하고 법에 따라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고 소신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채상병 가족에게 이 사건의 원인과 책임소재의 확실한 규명을 약속했다는 말도 했다. 필자가 1979년 해병 장교로 최전방에서 복무하던 시절에 전두환 일당이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그때 무력한 초급지휘관이었던 나는 장병들에게 부끄러워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박 대령이 채상병의 영전에서 다짐했던 말에 깊이 공감한다.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전과 다른 해병대 예비역의 반응이었다. 역대 해병사령관과 해병전우회가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라 촉구한 것은 정당한 요구이지만 극히 드문 예외적인 사례였다. 또한 박대령의 동기들도 ‘내가 박정훈이다’라고 참 해병의 보호에 단결력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군은 인권유린부터 군사 반란까지 국민의 군대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무수히 자행해 왔지만 상명하복이라는 불문율로 인하여 굴종과 침묵을 강요당하였다. 이런 과거의 군문화를 회고하여 볼 때 이번 의견개진은 정말 잘한 일로 여겨진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군의 사명에 비추어 보더라도 무도한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은 올바른 군인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 피카르중령의 사례처럼 한 명의 참 군인에 의해 시작되었던 사건이 국민들의 동조로 폭발력을 가질 때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참 군인 한 명이 진정한 군인정신과 애국의 길이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보여주며 사투하고 있다. 이제 국민이 답하고 반응하여야 할 때이다. 국민들이여! 무언가 시대전환의 기운이 다가옴이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 함께 역사를 추동하는 주역이 되자. 주권자인 국민이라면 깨어지기 쉬운 민주주의를 지키는 민주 장벽의 소임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리라.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