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천(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최형천 (주)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얼마 전 2주간 시간을 내어 우리 한민족의 족적을 찾아 중앙아시아 4개국 탐사를 다녀왔다. 우리 민족의 원향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자존을 찾으려는 역사학자와 일반시민들의 진지함과 함께한 의미 있는 역사탐방길이었다.

탐사 중 일행과 함께 논의했던 ‘전라도 천년사’ 발간문제가 이제 호남을 넘어 전국의 화두가 되고 있다. 경과를 간단히 설명하면 전라도라는 지명이 정명되고 1,000년이 되던 해인 2018년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그리고 전라북도 3개 광역지자체가 ‘전라도 천년사’를 편찬하기로 합의하였다. 집필 목적은 전라도 역사의 훌륭한 점을 소개하여 도민으로서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간 직전에 시민단체가 서술내용의 중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편찬위원회는 역사를 애호하는 시민들을 ‘사이비’라 폄하하고 비난하는 학자답지 못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 확대되었다. 자신의 주장에 당당한 학자라면 진솔하게 반론을 제시하면 되는데도 그들은 논점을 회피하고 메신저인 시민단체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학문이 어떻게 발전하겠는가?

다음으로 집필내용을 보면 전라도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단군을 신화인물로 단정하고 고조선을 축소한 점, 전라도를 청동기와 철기문화가 늦게 발달한 낙후된 지역처럼 기술한 점, ‘일본서기’에 의존하여 영산강 유역을 야마토 왜가 지배했다는 주장을 간접적으로 교묘하게 서술한 점 등은 자부심은커녕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에서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다”라고 썼다. 그런데 이런 자조적인 역사를 가지고 어떻게 정신의 승리를 논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최근 역사연구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고조선의 건국연대가 고고학적으로 기원 전 30~24세기로 밝혀진 사실을 의도적으로 기술하지 않은 점, 영암에서 발굴된 기원 전 26~23세기 청동기를 부정한 점, 우리나라 벼농사는 3,000년 전 금강과 호남의 평야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정설임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벼농사 시기를 백제시대로 본 점,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반영하지 않은 점 등은 수많은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해결의 시작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먼저 국(가)사가 엄연한데도 지역사 또는 지방사는 왜 필요할까? 국(가)사에서 미처 주목하지 못했지만 지역민의 관점에서 중요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부각하여 국(가)사의 미진한 점을 보완하는 것이 지역사를 편찬하는 목적일 것이다. 20세기 역사학의 구루라 불리는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설파한 이유는 역사가 단순한 과거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라 오늘의 관점에서 새롭게 의미를 찾고 그것이 미래로 나아가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인터넷시대에는 국내·외적으로 무수한 역사연구물이 실시간 공개되고 있어 집필진은 이를 활용하여 전라도사를 새로운 학설과 현대적 감각으로 다듬어야 하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주류 학자들의 낡은 학설(특히 일본제국주의 지배시대의 식민사관)을 도그마처럼 숭배하여 내용은 진부하고 집필태도는 구태의연하여 도민들은 수치스러울 뿐이다.

한편, 우리 전라도 사람들은 왜 전라도사에 관심이 많을까? 불행하게도 전라도는 고려시대 이후 핍박받거나 소외된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임진왜란이나 동학농민혁명처럼 국가가 어려울 땐 앞장서서 나라를 지키고 정의를 세웠다. 그런 자긍심으로 살아온 전라도가 아니었던가. 이런 선열들의 정신을 부각시키고 현재화하여 전라도에 터전을 두고 살아갈 후손들에게 전라도민으로서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어서 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잘못 집필된 ‘전라도 천년사’는 자부심은커녕 정신적 고통을 주는 테러행위일 뿐이다. 그렇다면 결정권을 가진 정치권의 결단이 요청된다. 전라도민에게 수치심만 안겨주는 ‘전라도 천년사’는 당연히 폐기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라도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더욱 단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라도민들도 뭉치자! 역사문제도 이제는 도민이 나서야 한다. 도민들이 의병처럼 나서서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 상처받는 우리 역사를 지켜내야 한다. 역사문제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역사학자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역사를 바로 세워야 나라가 바로 서고 우리 아이들이 바른 역사로 미래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전라도민 여러분의 관심과 단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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