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신라계 진주김씨, 고려 시중 김추 시조
찰방 김철완 도암 도장리 입향 세거
을사늑약 후 독립운동 투신한 후손들
백파정·민요 전승하며 충효정신 계승

도(道)와 의(義) 숭상하며 민속문화 지킨 가문

백파정 전경

전남 화순 도암의 해망산, 고당산, 덕사봉으로 둘러쌓인 평야를 가로지르는 정천 앞에는 아름다운 전통마을 도장마을이 있다. 진주형씨와 진주김씨(晉州金氏)가 세거하는 이 마을은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 군락지가 보존되고 들노래 등 민요 80여곡이 전승되는 유서 깊은 명촌으로 알려져 있다. 도장마을에서 도(道)와 의(義)를 숭상하며 세대를 이어 온 진주김씨 회헌공파 김이용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 본다.

◇ 절의지켜 은거한 김이용 종가 열어
진주김씨는 두 계통이 동성동본이면서도 시조를 달리하고 있다. 신라계는 김알지의 28세손인 경순왕과 왕건의 낙랑공주 사이에서 태어나 고려 문하시중을 지내고 진성군에 봉해진 김추를 시조로 모신다. 가야계는 김수로의 13세손인 김유신의 둘째아들 김원술을 시조로 모신다. 김추의 후손 김무진(?~?)은 고려조 충혜왕 때 도평의사사, 집현전태학사를 역임하고 진양부원군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김태(?~?, 호는 회헌)는 좌참찬을 역임했고, 김퇴(?~?)는 현감을 역임했다.

진주김씨가 전라도에서 세계를 잇게 된 것은 김태의 후손 김이용(?~?, 호는 회헌)이 고려 말 판삼사사를 지내고 무안에 유배되었다가 고려조에 절의를 지켜 나주 왕곡에 은거했기 때문이다. 김이용 9세손 김철완(1606~?)은 병자호란에 김철견, 김철명 두 동생과 함께 의병창의하고 금천 찰방을 역임하고 ‘대산유고’를 남겼다. 그가 화순 도암 도장마을에 피신했을 때 부인 진주형씨와 혼인해 진주김씨의 도장마을 세거가 시작된다. 전라도 입항조인 김이용을 파조로 김주김씨 회헌공파가 도장마을에서 세계를 잇고 있다.

◇ 백파정에서 시문 짓고 학덕 쌓아
14세 김재탁(1776~1846, 호는 백파정)은 효행과 학덕으로 알려진 문사로서 진사시에 합격했다. 그가 백파정을 짓고 유유자적하며 학문에 전념해 백파집을 남겼다. 당초 바위벼랑에 초당으로 건립했으나 후손인 19세 김종환이 선조의 은거 유적을 기리고자 중재실이 있는 팔작지붕 기와로 중건해 현재에 이른다. 주인 김재탁의 시문과 능주목사 이광도의 상량문과 시문 등 31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당대 명필 설주 송운회(1874~1965)가 쓴 백파정 현판이 보존돼 있다.

16세 김용상(1858~1919, 호는 해석)은 어려서 학문을 배우고 주역 등 경서에 통달해 여러 제자를 기른 학자로서 을사늑약 후 상경해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독립자금을 모으는 등 활동하다 1914년 러시아 국경에서 체포돼 옥고를 치르고 낙향했다. 옥중 동지 및 망명 동지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 끝에 1919년 사망했다.

◇ 나라 되찾으러 독립운동 투신한 후손들
김용상의 조카인 17세 김영하(1878~1920, 호는 송정)는 정동근, 양재홍, 김교락 등과 함께 국권회복을 위해 전라 광복단 단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1917년 전남 나주 함평 등지에서 독립군자금을 모금했고 해외 독립운동가들에게 조달하다가 1918년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대구법원에서 10년형을 언도받고 옥사했다. 김용상은 독립의사 대통령표창을 받고, 김영하는 독립의사 건국포장과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으며 화순 도암 도장마을 김용상 생가터에 충혼탑을 세워 두 사람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입향조로부터 22세대를 이어 600여년의 가통을 지속하고 있는 가문은 12세 김시택(1712~1770)을 비롯한 26명의 효자 후손들을 배출했다.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해 들노래, 밭노래, 시집살이노래 등 민요 80여곡을 전승해 2003년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18호 ‘도암 도장리 민요마을’로 지정됐다. 종가는 분재기와 통문, 호적단자 등 고문서와 백파정, 충혼탑 등 유적을 보존하며 선조들의 충효정신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백파정을 짓고서’ - 김재탁(1776~1846)
海碧波黃注彼東(해벽파황주피동) 푸른 바다 누런 물결 동으로 흐르고
滿川波浪駕長風(만천파랑가장풍) 냇가에 그득한 물결 바람에 일렁이네
鶴來靈影天光淡(학래영영천광담) 학은 구름 속의 맑은 하늘에서 오고
鷺立蘆花月色中(노입로화월색중) 해오라기는 갈대꽃 달빛 속에 서 있네
浩濯靑邱千歲賁(호탁청구천세분) 넓고 깨끗한 이 땅은 천년토록 빛나고
均添百里永年豊(균첨백리영년풍) 백리 들판 고루 내린 비 해마다 풍년일세
亭如掛磬浮空出(정여괘경부공출) 정자는 풍경처럼 공중에 떠 있고
鏡裏烟霞坐主翁(경리연하좌주옹) 거울 같은 정경 속에 주인만 앉았어라
- 진주김씨 능주파 김이용 종가 후손 김성인 제공 -

백파정 앞을 흐르는 정천
항일애국지사 충혼탑.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서 김용상, 김영하 선생을 추모하여 김용상 선생 생가터에 건립했다.
백파정 현판. 명필 설주 송운회의 글씨다.
백파정. 해망산과 마을 앞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고당산 바위벼랑에 지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절경지에 위치한 백파정은 김재탁(1776~1846)이 세우고 김종환이 중수했다.
백파정에 걸린 31점의 현판 중 하나인 운인 송홍이 쓴 시문 현판. 송홍(1872~1949)은 화순 도암 출신 민족교육운동가, 시인으로서 항일광주학생운동의 아버지로 불린다.
백파정에 걸린 현판 중 광주목사 조운명의 시
종가가 보존한 호적단자 17점 중 하나.종가 14세 김인탁의 호적을 기록하고 있다.
절벽 위 백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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