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 전남 종가 재발견

한반도 통일 이끈 김유신 중시조
형제 문과 급제로 가학 전통 빛내
국난엔 목숨 바쳐 보국 충절한 집안
선조 유적 보존하며 정신 계승

장하고 통쾌한 충신 …유구한 가문의 역사

장열사

전남 화순 이양면 쌍봉리에는 학포당으로 유명한 전통마을 입구에 형제·부자 3명의 충신을 기리는 정려가 있다. 화순 김해김씨 석성공파 쌍봉종가를 찾아 김수로왕·김유신장군의 후손인 김해김씨 집안이 산자수려한 쌍봉리에 입향해 충신의 가통과 학덕을 이어 온 내력을 살펴본다.

◇ 김수로왕 시조로 2천년 가문 역사
김해김씨는 김수로왕을 시조로 모신다. 가락지역 아홉 고을의 수장(9간)과 부족원들이 구지가를 불러 대왕을 맞이하라는 하늘의 목소리에 따라 구지봉에서 춤추고 노래하니 하늘로부터 붉은 보자기에 싸인 황금상자가 내려왔고, 그 속에 든 6개의 황금알에서 동자가 차례로 태어나 6가야국 왕이 됐다. 첫째로 깨어난 사람을 ‘수로’라 이름 하여 금관가야 왕으로 모셨고 157년 간 재위하며 가야연맹을 이끌었다고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전한다.

가야국 10대왕 양왕(김구형)에 이르러 신라에 합병해(532년) 신라 진골 귀족에 편입됐다. 양왕의 증손자인 김유신(595~673)은 화랑도로 수련해 수많은 전투에서 승전한 문무겸장으로 태종무열왕의 왕비 문명왕후의 오빠이고 문무왕의 외삼촌이다. 벼슬은 태대각간에 이르고, 태종무열왕을 도와 통일의 위업을 이뤄 사후에 흥무대왕에 추존됐으며 광주 장열사 등에 배향됐다. 그가 김해김씨의 중시조다. 김해김씨 직계 종파는 경파, 사군파, 삼현파로 분파돼 각각 김목경, 김익경, 김관을 파조로 세계를 잇고 있다. 51세 김목경(?~?)은 고려 충선왕 때 과거 급제하고 조적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금녕군에 군봉됐으며 광주 두암사에 배향됐다. 그가 김해김씨 경파 파조로서 금녕군파를 열었다.

◇ 고려 금녕군 김목경 경파 열어
경파 5세 김효원(1370~?), 김효분(?~?) 형제는 문과 급제해 가학을 빛냈으며 각각 병조참의, 사간원정언을 역임했다. 김효분의 아들 김진손(1407~1449)은 문과 급제하고 승문원교리를 역임했다. 그의 아들 김영견, 김영서, 김영정, 김영순 4형제가 학덕과 공적을 남겼다. 7세 김영견(?~?)은 문과 급제하고 벼슬은 이조참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고 문종실록,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김영정(1437~1509)은 문과 급제하고 벼슬은 지돈녕부사, 전라도관찰사에 이르고 하정사, 정조사로서 두 번이나 북경에 다녀왔다. 그 동생 김영순(?~?)이 생원시에 합격하고 석성현감을 역임해 석성공파를 열었다.

김영순의 아들 김세응(1486~?)은 성종조에 호조좌랑을 역임했으나 연산군 집권시 보성으로 유배 가던 중 능주 쌍봉의 수려함에 반해 경기도에서 이주해 화순 쌍봉리에 입향 했다. 그의 아들인 9세 김명수(?~?)가 승문원교리를 역임하고 낙향해 쌍봉처사로서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10세 김학(?~?)은 벼슬에 나가지 않고 가학을 잇는 효자로 알려져 절효선생이라 불렸다.

◇ 진주 남강 순절한 충신 형제 기려
12세 김인갑(1564~1593, 호는 오재)은 무과 급제해 강계군수, 훈련원판관을 역임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김의갑(호는 서암)과 함께 의병 창의해 진양전투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진주성의 원군 요청에 응해 사선을 뚫고 최경회 장군과 합류했으며 성이 함락될 때까지 분전했다. 동생은 활에 맞아 순절, 자신은 남강에 투신해 순절했다. 최경회 장군은 그가 포위망을 뚫고 오자 장재쾌재(壯哉快哉: 장하도다, 통쾌하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라에서 선무원종공신에 녹훈하고 충신각(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59호) 정려를 내렸다.

김시엽(1589~1636, 호는 송은)은 무과에 급제하고 이괄의 난, 강홍립의 난에 의병을 일으켰고, 병자호란에는 옥과현감 이흥발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여산 회맹에 참여하고 화의 소식을 듣고 낙마해 생을 마감했다. ‘오재 서암 송은공 문집합록’에 유고를 남겼으며 호남절의록에 기록됐다. 화순 쌍봉리 충신각에서 그의 충의를 기리고 있다. 가문에서 의병으로 활약했던 인물은 김인갑, 김의갑, 김시엽 3충신 외에도 김시엽의 동생 김시정, 김시헌, 김시엽 3남 김발, 김원, 조카 김급 등이 병자호란에 의병 참여했고 한다. 종가는 오재공문집 등을 발간하고 김도식, 김현복, 김만식과 부인 천안김씨, 김현준 등 효자 열녀를 기리며, 금소재, 충신각, 장열사, 두암사 등 유적을 보존하며 선조의 정신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금소재 안채
금소재 종가 전경.
충신각과 종가터였던 화순 쌍봉리 풍영정.
금소재 현판.
충신각(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59호)
김인갑 공신녹권. 쌍봉 종가 사진제공
김인갑 공신녹권. 쌍봉 종가 사진제공

 

충신각 내 현판. 충신 김시화에게 내린 정려 판액이다.
두암사
두암사 현판
장열사 장서각 전사청
장열사 화랑원
장열사 외삼문 현판 ‘통일문’. 장열사는 통일의 대업을 이룬 김유신을 기리는 호남유림의 뜻을 모아 설립했으며 외삼문에 통일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장열사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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