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중심적 관점서 탈피…‘탈성장’ 경제 절실
‘머물고 싶은 섬’ 활성화 프로젝트 가동 긴요
‘발상의 전환’ 통해 섬 재생 운동도 병행돼야
공유(共有) 넘어 공유(公有) 규범 · 가치 필요

 

‘2022 국제 섬 포럼 in Yeosu’대회가 지난 10월 20일 영국, 캐나다, 일본, 한국 등 4개국 전문가 4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여수에서 열렸다. 이번 주요 주제는 여객선 공영제 실시를 비롯 섬 교통문제, 섬주민기본소득과 공유경제 등 현안들이 다채롭게 논의됐다. /여수시 제공
‘2022 국제 섬 포럼 in Yeosu’대회가 지난 10월 20일 영국, 캐나다, 일본, 한국 등 4개국 전문가 4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여수에서 열렸다. 이번 주요 주제는 여객선 공영제 실시를 비롯 섬 교통문제, 섬주민기본소득과 공유경제 등 현안들이 다채롭게 논의됐다. /여수시 제공

2022년 10월 20일부터 21일까지 여수에서 개최된 ‘2022 국제 섬 포럼 in Yeosu’에서는 국내·외 섬과 바다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들과 그에 대한 대안들이 최대의 화두로 제시되었다. 국내·외 섬과 바다 전문가들이 여수 히든베이호텔에 모여 1박 2일 동안 열띤 발표와 토론의 장을 펼쳤다. 주요 주제는 여객선 공영제 실시를 포함한 섬 교통 문제와 섬주민기본소득과 공유경제, 사회적 경제를 포함한 경제 문제, 그리고 섬의 의료, 보건, 복지와 관련된 중대 현안들이 다채롭고 풍성하게 논의되었다.

이 행사에서 논의된 의제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섬에 대한 종전의 기본 인식 자체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현재 국내 섬들이 처한 환경과 조건에 대한 역발상의 중요성을 다시 환기시킨 매우 과감한 의견이었다. 섬에 대한 선입관으로는 현재 섬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지방소멸론의 연장선으로 ‘섬 소멸론’이 주요 쟁점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지방소멸론을 중앙에서 지방의 문제를 파악하는 전형적인 예로 간주한다면, 섬 소멸론은 육지 또는 내륙에서 섬의 문제를 바라보는 육지중심주의적 관점이나 시각의 전형적인 예에 속하는 것이다. 이 경우, 예전에 유인도였던 섬들이 급속도로 무인도로 바뀌는 상황에 대한 인식 자체도 인간의 관점이 아닌 자연이나 생태환경의 시각에서 재조명해볼 수 있다. 인간이 섬의 주인에서 자연환경의 일부가 되는 변화는 무인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한다. 유인도의 무인도화가 곧 섬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사람이 살지 않는 섬 또한 어엿한 섬이다. 당연하게도 섬은 인간이나 사람보다 더 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섬에 사람이 안 살게 되었다고 해서 섬이 사라진다는 명제는 반드시 참일 수 없다.

섬이 사라진다는 말은 무엇보다도 섬의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여 유인도가 무인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화(化)는 곧 섬의 소멸이라는 발상은 결국 인간중심주의의 소산이 아니었을까? 지방소멸론이 지방을 인식하고 관리하는 중앙의 관점인 것처럼, 섬 소멸론 역시 섬을 인식하고 관리하는 육지나 내륙의 관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지방의 소멸을 방지하기 위해 제시되는, 소위 지방 활성화 방안들이 중앙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섬 소멸을 막기 위해 제시되는, ‘섬 활성화’ 방안, 예컨대 ‘가고 싶은 섬’이나 ‘머물고 싶은 섬’과 같은 섬 활성화 프로젝트가 섬의 인식과 관리를 위한 육지 또는 내륙의 관점에 고착되는 경우 역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섬의 활성화가 해당 섬을 방문하는 관광객 확보를 포함하는 관광산업의 대상으로만 이해될 때 섬은 단지 관광마케팅의 실험장으로 객체화된다. 각종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서 비즈니스화하는 ‘섬 활성화’ 프로젝트들은 섬을 육지나 내륙에 의해 규정되고 분류되는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주체로서의 섬을 방치하거나 폐기하는, 애초 기획한 바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하기도 한다.

한편, 발상을 전환하면 새로운 ‘섬 재생’ 운동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무인도가 될 상황에 처한 섬에 ‘빈집’이나 ‘폐가’의 공간이나 장소 개념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된 무인도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어 오히려 섬 자체의 경관이나 풍광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섬”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출생 장려 정책을 통한 섬 인구 회복이나 정주 인구 증대를 통해 섬 소멸이나 위기 극복을 위한 쓸모없는 소모전을 벌이는 데 몰두하거나 전력을 다할 것이 아니라, 또 “유인도가 무인도로 변해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되었다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보다 오히려 섬을 자연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공간이나 장소가 되었기에 사람들이 섬에 사는 동안 자연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방향으로 섬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실천을 전도(顚倒)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제이슨 히켈, 2021)라는 정신과 가치에 기반한 섬의 ‘탈성장’ 경제가 요즘처럼 절실할 때가 없었다. 탈성장은 전체적으로 성장과 규모의 경제와 관련이 있는 기존의 경제와 단순히 정도가 아니라 종류 자체가 전혀 다른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자본의 끝없는 축적 대신, 자연의 번영과 생태적 안정성,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을 위주로 조직된 경제를 가리킨다. 탈성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해결책이다.

예로부터 섬사람들은 자연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태도와 호혜 관계성, 공생의 가치와 규범 등 윤리적인 것에 기반을 두고 각종 종교적 신앙체계와 의례들을 발전시켜 왔다. 이런 점에서 섬의 종교와 의례는 기본적으로 윤리적인 것에 기반을 둔 믿음과 가치체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되돌려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취하고자 한다면 비윤리적인 것이다. 섬사람들은 윤리적인 것에 기반하여 이른바 ‘적을수록 풍요로운’ 경제를 구축해왔다.

경제가 지구의 위험 한계선 내에서 작동하도록 재조직하고, 인간이 생존을 위해 의존하는 지구의 생명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섬과 바다의 생명 시스템, 즉 감사의 태도와 호혜의 윤리에 기반한, 단순한 공유(共有)를 넘어선 공유(公有)의 규범과 가치를 재가동할 필요가 있다.

글/홍석준(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장·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정리/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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