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두문동 72현 조대운 후손
유배 온 직제학 조유도 입향
죽림재·학구당 세운 교육자들
절효 충신 기리는 정려 보존

인재 양성에 전념한 충효 가문

죽림재. 전라남도 기념물 제99호

전남 담양 증암천은 무등산에서 발원해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수남학구당, 죽림재, 관수정, 동강조대, 창평향교 등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품고 영산강으로 흐른다. 성산가단과 같은 수많은 선비 문사들에게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했던 유서 깊은 하천이다. 증암천(별칭은 창계천, 자미탄, 송강, 동강) 옆 잣정마을에 세거하며 대대로 학문 진흥과 인재양성에 전념한 담양 창녕조씨 밀직사공파 조은환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고려 밀직사 조준 중시조
창녕조씨는 신라 태사 조계룡을 시조로 모신다. 창녕 화왕산의 연못 ‘용지’(龍池, 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에서 치유를 위해 목욕한 예향이라는 처녀가 태기가 생겼는데, 태아가 동해신룡의 후손임을 알려주는 꿈을 꿨으며, 그후 태어난 아이의 겨드랑이엔 조(曺)자가 쓰여 있었다는 소문을 들은 진평왕이 이를 확인하고 아이 이름을 계룡이라 하고 조씨 성을 내렸다는 득성설화가 전해진다. 창녕조씨 밀직사공파는 시조 27세 후손인 고려 밀직사 조준을 중시조로 세계를 잇고 있다.

28세 조대운(1328~1398, 호는 산광)은 포은 정몽주와 함께 학문하고 왕도정치·경자유전 등 개혁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역성혁명 이후엔 두문동에 은거했다. 그는 두문동 충신들과 함께 순절한 72현 중 한사람으로 두문동서원과 장성 경현사, 담양 죽림사(전라남도기념물 제99호)에 배향됐다.

29세 조유도(1367~1450)는 고려말 보문각 직제학을 역임하고 선죽교피습사건에 관한 상소로 인해 담양 창평에 유배돼 후학 양성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고려에 절개 지킨 항절신으로 부친과 함께 두문동서원 등에 배향됐다. 그의 아들 조수문(1426~1494, 호는 죽림)은 경서와 사서에 정통해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성리학 탐구에 전념하며 창평에 죽림재를 세워 학당을 열어 소세양(좌찬성), 윤달신(판서), 조호(부제학) 등을 배출했다. 유훈으로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남겼다.

◇역사인물 배출 교육기관 열어
30세 조호(1450~1517, 호는 운곡)는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문과급제해 승문원정자, 사간원사서, 호조정랑, 사헌부집의, 홍문관교리를 거쳐 홍주·공주목사를 역임하고 연산군 때 낙향해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32세 조여충(1491~1573, 호는 계월당)은 중종 때 진사시에 합격해 동몽교관에 제수됐으나 윤원형의 득세에 낙향해 창평에 관수정을 짓고 송순·임억령 등 선비들과 교유했다. 그의 사촌 동생인 조여심(1518~1594, 호는 환학당)은 학덕 높은 학자로서 친형 조여함과 함께 명종 때 생원시에 합격했고 벼슬에 나가지 않고 성산가단의 정철·고경명 등과 교유했다. 학문 진흥에 뜻을 두고 폐쇄된 사찰 향적사에 삼봉서사를 열어 강학했으며(환학당), 창평 인근 25개 성씨 가문들과 협력해 과거를 준비하는 고등교육기관 ‘수남학구당’(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호)의 건립을 주도했다. 창평지역 사학인 학구당을 통해 정홍명(대제학)을 비롯한 여러 인재가 배출됐다고 한다.

◇전란엔 의병 · 부친상엔 시묘
33세 조국경(1519~1587, 호는 남촌)은 성수침의 문인이며 충효 독실한 문장가로 알려져 남전여씨향약을 모방한 향규촌약을 만들고 후학양성에 전념하다가 충순위를 역임했다. 36세 조부(1593~1656, 삼청당)는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충의와 효행이 널리 알려진 효자다. 부친상을 당해 주야로 곡을 하던 그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나라의 위급’을 우선해 의병을 창의하고 완산에서 병장기를 지원받고 상경 중 화친 소식에 통곡하고 돌아와 부친 장례식을 마쳤다고 한다. 움막에서 죽으로 연명하며 3년간 시묘살이를 행했고 그곳에 삼청당을 지어 은거했다. 이 사실이 나라에 알려져 제릉참봉에 제수됐으며 충효행적을 표창하는 정려를 하사받았다.

종가조인 44세 조은환(1865~1945)은 덕행이 알려졌고 창녕조씨 시조묘 재각 종덕재(경북 문화재자료 제91호) 재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종가는 ‘전가충효’(傳家忠孝) 가훈을 지키고 죽림서원(죽림재, 죽림사, 서일재, 취사루, 정일재, 육영당, 장서각 등), 충효정려, 관수정, 고문서 등 선조의 유적을 보존하며 학덕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죽림사 사당
죽림서원 육영당. 서원의 동재에 해당한다.
충효정려. 효자 조부의 효행과 충의를 기려 나라에서 내린 정려다.
충효정려 판액.
수리중인 종택 전경.
죽림서원 장서각. 지역 유림들의 학문연구에 필요한 장서를 보존했던 문서고다.
죽림서원 취사루. 서원의 기숙시설로서 향사를 참여하는 유림 이나 강학당 학생들이 숙박했던 공간이다.
죽림서원 세일재. 서원 강당에 해당한다.
관수정 전경
관수정. 계월당 조여충이 세운 정자로서 앞에는 증암천이 흐르고 창평향교와 옛 창평현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위에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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