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신라 왕족으로 8대 평장사 배출
개혁에 앞장·불의엔 비타협 은거
의병 충신·효행 효자 가통 이어
명당터에 정원 가꾸며 효행 계승

효심으로 가꾼 정원…“어머니 보시기에 좋았더라”

종가 안채와 사랑채

쪽빛 바다의 득량만과 오곡이 풍성한 예당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전남 보성 방장산과 오봉산 사이 낮으막한 초암산 비탈에는 평화로운 초암마을이 있다. 명당터에 자리잡은 종가 일원에 편백숲, 대나무숲 우거지고 봄·여름·가을·겨울 갖가지 꽃으로 만발한 별천지 같은 풍광으로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초암정원이 있는 마을이다. 신라왕족, 고려명족, 조선명문이라는 가문의 찬란한 역사보다 선조가 물려준 충효·공손검약 정신을 소중히 여겨 평생 효행으로 일관하며 세계적인 명품정원을 가꾼 보성 광산김씨(光山金氏) 문숙공파 김달희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신라왕자 김흥광 시조
광산김씨는 신라 왕자 김흥광을 시조로 모신다. 그는 무주(광주의 옛이름) 서일동(현 담양 평장동)에 은거해 고려 태조에 의해 광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로부터 광주 광산(光山)을 본관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번성한 명문가로 세계를 잇고 있다. 서일동은 8대가 연이어 평장사를 배출했기 때문에 평장동으로 지명을 바꿨고 영조 때 유허비, 고종 때 취사당과 제단을 설치했던 곳에 평장사(사우)를 복원하고 그를 추모하고 있다.

14세 김주정(1228~1290, 시호는 문숙공)은 과묵하고 학문을 좋아한 고려 문신이다. 음서로 부성위를 맡았고, 과거 급제해 해양부녹사를 거쳐 대부경 좌사의대부를 역임할 때 지방관 근무태도 및 향리 부역 폐단 등 개혁안을 제시했으며 우부승지로 원나라에 가서 왕경유수군 등 둔전군 지원 백성의 고통과 김방경에 대한 누명을 밝히는 공을 세웠다.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에 소용대장군 좌우부도통으로 참여해 태풍으로 전복된 병선에서 많은 군병들을 구출했다. 판밀직사사, 진번만호, 문한학사 승지, 지도첨의사를 거쳐 충청 전라 경상도 계점도지휘사에 올랐다.

◇고려 명신·원나라 황후 배출
김주정의 아들인 15세 김심(1262~1338, 시호는 충숙공)은 두 번이나 공신에 오르고 원나라 고려도원수가 된 고려 명신이다. 원에 볼모로 다녀 온 후 낭장, 우부승지를 거쳐 밀직부사, 진번만호, 도첨의중찬에 올랐다. 충렬왕·충선왕·충숙왕의 원나라 행을 호종하고 절개를 다해 보좌해 화평부원군에 봉해지고 여절보안공신(수성수의충량공신 개칭), 협보공신에 올랐다. 왕과 왕자를 이간질하거나 신임을 등에 업고 뇌물을 챙긴 간신의 죄상을 밝혀 처벌받게 하고 그 때문에 5년 유배당했다. 그의 딸 달마실리(원나라 이름)가 원황제 인종의 비가 되자 장인인 그는 고려도원수가 됐고(1309), 훗날 그녀는 황후에 올랐다(1328).

김심의 넷째아들인 16세 김석견(1277~1346)은 벼슬은 밀직부사, 화평부원군에 봉해졌다. 왕궁을 습격한 조적의 난에 충혜왕을 지킨 공으로 도형벽상공신이 됐다. 그의 둘째 아들 완자첩목아는 원에서 예부상서를 지냈다. 큰아들 김수(?~1393)는 공민왕에게 탐라 평정에 방략을 바쳐 도평의우정승에 증직되고 해양군에 봉해졌다. 21세 김호(1390~1452)는 양촌 권근의 문인으로 세종 때 과거급제하고 성균관사예, 응교, 도승지를 거쳐 이조참판, 함길도안렴사에 올랐다. 그가 보성 웅치에 은거해 보성 입향조가 된다. 22세 김자용(1415~1472, 호는 청류당)은 한성참군, 사헌부감찰, 지례현감을 거쳐 사헌부집의를 역임했다.

◇8대독자 숙원 푼 명당터 명품정원
25세 김정(1527~1613)은 충순위를 지낸 김중겸의 장남으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임진왜란에 동생 김구와 함께 의병창의하고 임금을 호종해 호남절의록에 올랐다. 동생 김구는 순절했다. 28세 김달희는 참봉 김위인의 둘째아들로 광주 석저면 도림촌에서 종가를 열었고, 그의 아들 김희암이 장흥으로 이거했다. 33세 김선봉(1742~?)은 종가의 자손 번성을 위해 보성 득량 초암마을에 양택을 잡아 그 종가터가 현재에 이른다. 36세 김경현(1822~?)이 아들 5형제를 배출함으로써 8대를 독자로 잇던 종가 숙원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40세 김재기씨(종가 13대 종손)는 8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두 살 여동생까지 잃은 슬픔을 안고, 길러준 어머니를 극진한 효심으로 봉양했다. 노구에도 밭일을 멈추지 않는 어머니가 편안하시도록 밭에 철마다 꽃피는 나무를 심고 산책로에 잔디를 깔았다. 뒷산에 매년 100주씩 나무를 심은지 40년째, 울창한 편백숲과 대나무숲이 조성됐고, 세상에 둘도 없는 힐링 절경의 정원이 됐다. ‘충효가전 공검지신 忠孝家傳 恭儉持身’ 가훈을 지킨 절효(節孝)의 산물이라 할만하다. 사시사철 꽃이 만발하고, 풍요로운 예당 들판과 득량만 푸른바다, 신령스런 팔영산 풍광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초암정원은 낳고 기른 두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빚은 종가의 보배이고 집안의 자랑이 됐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가훈 ‘충효가전 공검지신 忠孝家傳 恭儉持身’
광풍각에서 바라본 예당들판과 득량만 바다 풍경. 뒤로는 전망대까지 이어진 편백숲 산책로, 좌우로 대숲과 야생차밭, 아래로는 갖가지 과실수와 12월에도 피는 꽃길, 어머니 버선발로 걸어도 좋을 잔디가 종가 안채까지 이어져 진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초암 정원. 사시사철 꽃이 만개해 있고 편백숲과 대숲과 더불어 탄성을 자아내는 명품 민간정원으로 가치가 인정돼 전라남도 민간정원 제3호로 지정됐다.12월 초순인데도 각색의 산다화가 만발했다.
편백숲 산책로 옆으로 꽃길이 펼쳐졌다.
대나무숲길 산책로
편백숲. 매년 100주씩 편백나무를 식수하고 있어 수령 40년목부터 1년목까지 다양하지만 빼곡히 들어서 피톤치드를 발산하고 있다.
초암정
초암정 현판
종가가 보존한 민속생활 문화유산을 설명하고 있는 종손 김재기씨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