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침공 전해지자 근심 가득
현지 가족 생사 갈림길에 ‘발동동’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났으면”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봐 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1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 만난 한 우크라이나인은 8년째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손자와 며느리 걱정에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에 두고 온 가족들의 걱정에 핸드폰을 들여다보는게 습관이 된 것이다.
고려인마을에서 케밥집을 운영 중인 최피탈린(65)씨는 “현재 13살 된 손자가 우크라이나 니콜라예프에 거주하고 있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못 본지 5년이 다 되간다”면서 “손자의 얼굴을 어루만질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크라이나로 가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후손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최씨는 우크라이나로 거처를 옮겼지만 지난 2014년 크림반도 전쟁 당시 며느리와 손자를 두고 한국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며느리와 손자는 현지에서 학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오기로 해서 남아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그때 같이 왔으면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지금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데리고 오고 싶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너무 위험하다”고 자책했다.
다행히도 그는 손자, 며느리와 연락이 닿고 있었다. 남도일보 취재진에게 가족사진을 보여준 그는 “얼마 전 슈퍼마켓에 가다 봉변을 당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슴이 순간 철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면서 “평소에 손자가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씨처럼 광주 광산구 고려인마을에 살고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기 때문이다.
폐암 진단을 받고 현재 투병중인 남루이자씨도 “우크라이나에 두고 온 딸과 사위 걱정에 눈물로 하루 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제발 딸과 자주 연락이 닿길 바란다. 어느 순간 연락이 끊어지면 정말 혼란스러울 것 같다”면서 “그저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을 뿐이다. 제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고 울먹였다.
우크라나아인 출신 고려인들은 지난달 27일 고려인마을교회에 모여 가족의 무사안위와 전쟁이 조속히 끝나기를 기원하는 기도모임을 갖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월곡동에 거주지를 마련한 고려인들은 2020년 12월 기준 7천여명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우크라이나 출신은 260여명으로 알려졌다. 고려인마을 대표는 신조야씨로 최씨 처럼 우즈베키스탄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가 한국에 왔다.
신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살 수가 없어 우크라이나로 갔는데 무슨 전쟁을 생각했겠느냐”면서 “전쟁이 하루속히 끝나 두고 온 가족들과 건강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모임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국제적인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고 밝혔다.
/조태훈 기자 ·이서영·이현행 수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