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훈(더강한시민사회연구소장)

 

서정훈 더강한시민사회연구소장

광주시가 2조5천억 국가 AI컴퓨팅센터를 품지 못했다. 해남 일대에서 오픈AI·SK그룹 등이 참여하는 전남으로 돌아갔다. 전남은 표정관리, 광주의 허탈감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유치전에서 광주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부분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였다. AI컴퓨팅센터 광주 유치 서명운동에는 총 17만829명이 참여했다. 이처럼 시민참여가 활발한 것은 AI컴퓨팅센터가 단순한 산업 유치가 아니라 지역 균형발전의 상징 사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가 벌인 총력전의 뒷 끝에 상실감이 크다. 항간에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치명타라는 평가가 나돈다. 민주화 과정에서 광주의 희생과 푸대접을 말하기도 하고, 대선공약 불이행을 말하기도 하다. 유치전에 뛰었던 시민들의 분함과 서운함이 쉽게 가라앉기 힘들다. 광주시장이 대통령실과 여당사를 찾아다니며 지역 홀대에 항의하고, 시민사회까지 엄포를 놓아야 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피차간에 궁색한 상황이다. 대기업과 컨소시엄에 의한 도시간 유치 경쟁을 노골적인 정치 논리로 따지는 것 자체가 옹색하기 때문이다.

옛말에 예인부답(禮人不答)이란 격언이 있다. 남에게 예를 다해 주었는데, 답례가 없으면 자신의 공경한 태로를 돌아보란 뜻이다. 부족하고 아쉬운 대목의 성찰은 또 다른 해법을 찾기 위함이니 피할 것만은 아니다.

지금에 와서 AI컴퓨팅센터가 그나마 광주와 인근지역인 전남으로 선정되면서 서운함은 덜하다. 이런 형국이라면 광주·전남 행정통합의 필요성이 더욱 큰 설득력을 갖는다. 양 지역이 갖는 지리적 힘과 자원의 실체를 인정하고 미래지향적 협력방안을 포괄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지역통합을 설정함으로써 유치 실패에 따른 침체국면을 전환할 수 있고 시민 상실감을 치유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그렇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몸이 너무 경직되어 막상 태도를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광주시의 궁색함이 크다.

막대한 국가사업 유치에 명운을 걸고 실패하면 그 지역이 통째로 좌절감에 빠지는 것이 현행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각 지역마다 상생에 의한 발전논리가 아닌 경쟁적 지역대결 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이런 체제하에서 대규모 국가사업을 추진하는 중앙정부가 큰 문제이다. 처음부터 투명하고 공정한 자세를 보이지 못하고, 지키지도 못할 정치적 공약부터 남발하는 무책임을 저질렀다. 이를 찰떡같이 믿고 있었던 지역은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그러니 지역 홀대론이 등장하게 되고 정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집요한 욕망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번 사례는 지방자치가 형식화되는 부정적 징조를 중앙정부가 조장한 것이다. 마치 지방자치가 경쟁을 위한 시대적 산물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금년으로 지방자치 30년의 역사를 맞이하고 있다. 지역간 상생발전을 위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협력적 관계는 나타나지 않고, 오로지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과 중앙예산에 각축전을 벌이듯 유치경쟁에만 몰두할 뿐이다. 지방자치가 여전히 중앙정부에 목매달려 있음을 확인해준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확인시켜 주었다.

평소 광주시장과 전남지사가 광주·전남의 통합적 행보를 착실하게 가져왔더라면 오늘의 궁색한 국면은 피해 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동안 광주와 전남이 이전과 통합, 상생협약, 특별자치도, 메가시티론을 제기하며 오락가락한 횡보를 걸어왔다. 다시 광역연합을 추진하겠다니 그동안의 행보로 봐서 새로운 협약의 정책적 실효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새 정부의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에 발맞춰 추진하고 있는 ‘광주·전남 특별광역연합’이 힘이 실리지 못하고 있다. 연내 출범에 차질을 빚고 있다.

마지못해서 벌이는 광역협약이라면 하루속히 그 소극성을 떨쳐내라. 지역소멸 시대에 지역간 도시간 협력하지 못하면 지역의 미래 희망은 없다는 것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중론이다. 시·도 당국자들은 어찌하여 정작 이러한 외침에 듣는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인가. 광주와 전남이 상생발전의 그림을 그려내지 못한 채 각자의 외길 횡보만 이어가는 것은 동반 소멸이란 혹독한 최후를 앞당기는 어리석은 행위이며, 지속가능한 지역의 염원을 거스르는 역적(逆賊)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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