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욱이 전화상으로 다시 말했다.
“초청해주어서 고맙소. 그러잖아도 내 화원으로 술 한잔하러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갔소. 미군 수뇌급들이 단골로 온다지요? 밀실정치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고 하는데, 축하합니다. 나 내일 저녁시간 가도 되겠습니까?”
순간 송안나는 옳다구나 했다. 그를 잡으면 확실한 뒷배경이 되면서 인맥을 하나 잡으니 장사도 잘될 것이다.
“어서 오시어요. 그러잖아도 초청하려고 했어요. 맨발로라도 마중나갈 게요.”
“예쁜 아가씨들이 많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 소문도 맞소이까?”
“직접 와서 보셔야죠. 견물생심이잖아요.”
“그래도 송 마담 얘길 직접 듣고 가야지. 꼭 아가씨들을 보러가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여자들 아름답고, 음식 맛있으면 좋지.”
“영화배우급들은 아니지만 순수한 아이들입니다.”
“아다라시? 순처녀들만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그러자 송안나는 이런 상노무 새끼, 왜 이렇게 저렴하게 노니? 하면서도 상냥하게 말했다.
“이름난 아름다운 여자보다 내용이 꽉 찬 여자. 실속있는 여자 아이들이 있다고 하면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네요.”
“아, 농담이지. 다만 영화배우, 탤런트, 가수들은 금방 소문이 날 수 있고,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는 것과 같이…나는 실속파요, 하하하.”
“알았어요. 영감님, 취향에 맞게 준비할 게요.”
송안나는 에이스급 김화선과 아가씨 둘을 차출했다. 세련되고 교양있고, 기교가 대단한 아이들이었다. 천부적으로 몸들이 좋았다. 그 중 김화선과 함께 밤을 보낸 남자들은 뻑 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코피를 흘리거나 비실비실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일어나지 못한 남자들도 있다고 했다. 이런 화선이라면 그가 아니라 그 할애비라도 붕 뜨게 보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김화선,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야. 각하 모시듯 할 수 있어?”
김화선은 각하가 가면무도화를 하며 술먹고 주정부리다 들통난 모 요정 사건 이후 궁정동으로 안가를 옮겨갔을 때 불려간 아이였다. 중정은 사건 이후 각하 경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여 아예 청와대 옆 궁정동에 안가를 차려 각하를 위한 저녁 파티를 열었다. 이때 내로라 하는 탤런트, 영화배우, 유명가수들이 불려갔다고 했다. 비밀리에 파티를 열었지만, 다녀온 아가씨들이 알게 모르게 소문내다 보니 드러난 것이었다. 김화선도 그중 하나였다.
불려간 그들이 모두 성도구가 된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곳을 다녀왔다 하면 그런 식으로 소문이 났다. 거기에는 자가발전하는 경우도 많았다.
은근히 각하의 부름을 받았다는 식으로 자기 몸값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라져버린 여자들도 있었다. 강변 도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콜걸도 있었고, 영영 서울 바닥에서 행불이 된 여인들도 있었다. 그들이 모두 그 일로 사라졌다고 볼 수 없었지만, 세상에는 그런 구차한 소문들이 나돌았다. 밀실정치 무대에서 지배층과 재벌들의 타락과 그 2세들의 난삽한 행동들이 표출되었다. 처음에는 소문으로만 나돌던 것이 어느새 커다란 스캔들로 비화되었다.
김화선도 그 대오에 있었다. 그런 아이를 대원각으로 진출한 후배로부터 빼내온 아가씨가 김화선이었다. 그는 다른 기생들과 갈등이 심해 빠져나와 밀실정치 부대를 고발하려는 것을 송안나가 여러 경로를 거쳐 스카웃해왔다.
“너 남자를 녹인다는데 어떤 비법이 있니?”
송안나가 김화선에게 물었다.
“글쎄요. 남자들이 내 몸에 들어오면 무쇠같은 남자도 묵이 되어버리더라구요.”
“묵사발이 되어버린다고?”
“묵사발은 좀 천박한 언어니까 그렇게는 말할 수 없고, 그냥 물이 되어버리더라구요.”
그때 현관이 요란하더니 김형욱이 일행 몇명을 대동하고 화원으로 들어섰다.
“나 송안나 사장을 만나러 왔소이다. 좋은 술과 안주, 맛있는 요리가 있다는 소문 듣고 왔소.”
송안나가 뽀르르 현관으로 나가 김형욱 일행을 맞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