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안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당신들 김형욱 부장이 여기에 와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죠?”

“그건 말해줄 수 없습니다.”

“말해줄 수 없다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송안나의 태도가 완강했다. 그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경찰 불러봐야 이미 끝난 일입니다.”

순간 그녀는 이자들이 김형욱의 대척점에 있는 하수인들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정보 요원들은 같은 조직 안에서도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녀는 타일러 장군이 취하던 행동을 눈여겨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가 부리는 하수인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를 감시하는 또다른 요원을 붙이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김형욱이 해임되고, 홧김에 술을 먹고 울분을 토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다른 밀정이 미행했을 수 있다.

“우리는 정의를 해치는 자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행동으로 결행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키 작은 청년이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당신들 정체가 뭐예요? 정체를 말하지 않으면 정말 경찰을 부를 거예요.”

키 큰 청년이 웃더니 비밀스럽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 속에는 자신들의 행동이 떳떳하다는 면을 풍기고 있었다.

“우린 문리대 학생회 간부들입니다. 우리에게도 정보가 있습니다. 그것만 알아주시고, 김형욱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만날 이유가 뭔데요?”

“물을 것이 있습니다. 흡족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없애버리겠습니다.”

“그는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해치겠다는 것은 비겁하지 않나요?”

“역사의 단죄죠. 이렇게 버림받을 것 알면서도 민주인사를 잡아가두고 고문하고, 한 집안을 풍비박산, 완전 파괴시켜버린 것이 뭔지 물을 것입니다. 그건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 답이 신통치 않으면 죽여버리겠습니다.”

송안나가 그들을 골방으로 이끌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내 충고하겠는데, 당신들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다면, 투쟁의 방법을 단선화해선 안돼요. 길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김형욱 부장도 그중 일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정권을 위해 온 몸 바쳤지만, 파워 게임에서 밀려난 루저들이 있어요. 그들을 이용할 줄 알아야죠. 권력의 속성이란 복잡한 것 같지만 단순해요. 적과 동지만 있을 뿐이에요. 권력으로부터 낙오된 자가 좌절감을 맛보고 체념하는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증오하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경우도 있죠. 특히 권력의 맛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 마약과 같은 권력욕을 잊을 수 없어요. 그런데 하루 아침에 쫓겨나면 자연 복수 심리가 끓어오르지 않겠어요? 그런 사람들을 이용하는 걸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그게 가능합니까?”

키작은 청년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잖아요. 권력의 심부에서 정변이 많이 일어난 거…반복하지만, 권력으로부터 배척당하면 그 배신감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들은 이념이나 가치로 사는 자들이 아녜요. 오직 이익 중심으로 사는 자들이죠. 그런 자들이 권력의 한 자락에서 밀려나면 일반 사람들이 갖는 것보다 천배 만배 더 큰 박탈감과 좌절감을 맛보고, 그에 대응해 거칠게 저항하는 수가 있어요. 군 출신이라면 더욱 그래요. 김형욱이란 사람, 멧돼지처럼 거칠고 우직하고 저돌적인데, 저런 사람을 이용하면 당신들이 원하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지 않겠어요?”

“차도살인을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죠. 이런 투쟁의 스킬도 있는 거예요. 거리에서 독재타도만을 외치며 빈 주먹 허공에 날리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비생산적인가요. 반면에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거한다는 차도살인.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 그런 방법도 차용할 수 있는 것이 정의 실현의 길일 수 있다는 것 모르세요? 지난 과오를 씻고 진정한 애국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미덕도 있잖아요.”

두 청년이 송안나를 존경의 빛으로 바라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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