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욱의 어깨가 무너지듯 한쪽으로 쓸러더니 쓰러졌다. 괴한이 또 각목으로 내려치려는 순간, 김형욱이 본능적으로 몸을 비키며 소리쳤다.
“이놈들 누구냐?”
괴한들은 대답이 없었다.
“이놈들, 내가 누군줄 알고 덤비느냐?”
그때서야 괴한 하나가 힐난했다.
“소리 지르면 칼 들어간다. 이 새끼, 잘 새겨들어. 국민을 공경하라고 공직을 준 거지 공격하라고 준 것 아니잖나. 선량한 국민들에게 몹쓸 짓 했으니 너는 천벌 받아야 돼. 니깟놈 공동묘지에 파묻어버리면 그만이야. 너 그 짓 많이 했잖나.”
그때 골목 아래쪽에서 청년 둘이 올라오고 있었다. 키 큰 청년과 키 작은 청년이었다. 그들은 한 시간 전 화원을 찾은 젊은이들이었다. 두 청년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괴한들이 갑자기 “튀자!” 하고 속삭이더니 한 순간에 옆 골목으로 사라졌다.
두 청년이 쓰러진 김형욱 앞에 왔을 때,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김형욱은 인사불성이 되어 일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직감적으로 그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들에게 테러를 당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없었다. 그들 내부의 권력 다툼인 것이었다. 키 큰 청년이 키 작은 청년에게 말했다.
“지금 화원에 연락해야 하지 않소? 영업부장한테 알리세요.”키작은 청년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더 사건을 복잡하게 하는 건 아닐까요? 화원을 시끄럽게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이 사람, 여관으로 모시죠. 여관까지 안내하고 사라지면 됩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두 사람은 김형욱을 일으켜 인근 여관으로 부축해 갔다. 골목 안쪽 깊숙이에 있는 여관인지라 바람 피는 남자나 ㅤ젊은 아베크족들이 찾는 곳이어서 분위기는 조용했다.
“이분 명동 양아치들한테 돈 뺏기고 얻어맞은 사람이오. 술에 취했으니 깨어날 때까지 주무시도록 놓아주시오.”
키 큰 청년이 여관비를 내고, 주인 할머니에게 당부했다. 주인 할머니는 투숙객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서울문리대 학생회실에서 심야 간부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이동건이 주재했다. 그 자리에 화원을 찾았던 키 큰 청년과 키 작은 청년이 합류해 있었다. 그들은 학생회 행동대원들이었다. 남궁현일의 주선으로 행동에 나선 간부들이었다. 두 청년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동건이 결론 삼아 말했다.
“김형욱이 화원으로 갔다는 첩보를 받은 건 다른 정보 라인으로부터 들은 거야. 그쪽에서 아마도 우리를 이용하려 했던 것 같아. 우리를 이용해 정적을 제거해달라는 뜻이었겠지. 김형욱은 학생 탄압, 야당 탄압, 지식인 탄압, 민주화 인사 탄압 따위 극악무도한 짓을 했으니 우리가 응징해도 된다는 제보였던 거야. 그들이 미워하는 자를 대신 쳐달라고 우리에게 정보를 준 건데, 동지들이 이성적으로 대처한 것은 잘한 일이야. 이용당하지 않은 것은 여러모로 우리들 활동에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야. 그자가 테러를 당했다면 언론에서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수사 선상에 우리가 걸려들 수 있어. 김형욱에게 원한을 품은 것은 민주화 인사나 학생들 공동의 제거 대상이었으니 그걸 이용했으리라고 봐. 그래서 문제는 지금부터야, 수사 당국은 우리를 체포 구금의 구실로 삼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이용당해거 되겠어? 그럴 수 없지.”
이래도 당하고 저래도 당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져와선 안된다는 설명이다.
“다시 말하지만 신문에 이 테러 사실이 보도되나 안되나를 봐야 돼. 보도되지 않으면, 공권력이 개입했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이 되는 거고, 김형욱을 못살게 함으로써 끽소리 하면 죽인다는 사인이 간 것이니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의 권력의 실상이 이번 테러 사건으로 증명이 되는 거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