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안나가 그러면서 말을 보탰다.
“나는 간첩 잡는 새끼들을 원망해왔어. 우매한 백성들, 생사람 잡아족치면서 그걸 이용해 영전과 특진과 포상의 기회로 삼은 것을 보았거든. 하지만 지금은 그들을 상대로 술집을 하는 사람이니 내 개인적인 억울한 감정은 일단 덮겠어. 대신 사람을 하나 붙여줄테니 그를 만나봐.”
“그가 누굽니까.”
남궁현일이 물었다.
“미스터 코호트야.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국내서 활동하는 사람이야. 주로 군납을 하면서 정보원 노릇을 하고 있지. 타일러 장군에게 연락했더니 미스터 코호트를 만나보라고 했어. 그를 아현동으로 데리고 가봐.”
남궁현일은 시내에서 미스터 코호트를 만나 아현동 고개로 갔다. 긴 골목 사이로 무슨 학교가 나오고, 학교 뒷담을 지나니 으슥진 언덕길이 나타났다. 국민주택 같은 집들이 수십 채 늘어서 있는 곳을 지나니 그중 나무가 무성한 집이 나타났다. 집은 정원에 묻힌 듯이 숨겨져 있었다. 남궁현일이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자 건장한 사내가 나타나서 물었다.
“어디서 왔죠?”
“화원에서 보내서 왔습니다. 어르신을 뵙고자 합니다.”
그러자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가 두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응접실로 안내되어 한동안 기다렸으나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안내한 건장한 사내에게 “어째 더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묻자 그가 말없이 거실 위쪽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거실 위쪽에 감시 카메라가 튀어나와 있는 것을 남궁현일은 보았다. 그는 순간 김형욱이 방문객을 일일이 살펴본뒤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적중했다. 10여분 후 그가 나타났다. 똥똥한 체구였으나 부스스한 머리에 침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세당당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타일러 장군의 심부름입니까?”
수인사가 끝나자 그가 코호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미국으로 데려다줄 수 있습니까?”
“상의해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다만 왜 미국으로 가려고 하시는지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비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오. 당국에서 나의 해외 방문길을 막고 있소. 왜 그러는지 아시오?”
코호트가 사정을 잘 몰랐던지 주춤하자 남궁현일이 나섰다.
“부장님이 정권에 복수할 것이라고 의심하기 때문 아닙니까?”
“개자식들, 내가 얼마나 각하에게 충성했는데, 나를 배신자로 모는 거야? 내가 배신하고 복수한다고 믿는 거야?”
그가 탁자 밑으로 손을 내밀더니 양주병을 꺼냈다. 양주병은 노상 탁자 밑에 놓아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가 마개를 열고 병째 몇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오늘의 각하를 만든 사람은 김종필도 아니고, 김성곤도 아니고, 길재호도 아니고, 김진만도 아니고, 이후락도 아니야. 오직 나 김형욱이야. 그런데 개헌을 하자마자 나를 쳤어. 정권을 위해 그토록 많은 간첩을 잡아들이고, 반체제 인사를 잡아들이고, 정적들을 제거하면서 질서를 잡아준 나를 이렇게 골탕먹일 수 있느냐 말이야. 받아들일 수 없어.”
코호트가 다르게 물었다.
“고향이 이북이라고 했지요?”
“그렇소.”
“그러면 왜 그토록 반북적이고, 반공 대결적입니까.”
“대통령 각하를 위해서지. 내가 반공적이고 반북적인 것은 오로지 각하를 위해서라는 것이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