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규(광주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

 

임명규 광주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

다시 5월이다. 80년 5·18에서 누군가는 차이 없는 반복을 보지만, 누구는 구제하고 해석해야 할 암호문을 본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직 그 시간에 갇혀 있다. 이번 43주기에 관심 있게 지켜본 것은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과 대한민국 특전사동지회를 통해 드러난 용서와 화해의 문제였다. 5·18처럼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진 국가폭력의 경우 특히, 40여 년이 지난 상황에서 올바른 용서와 화해의 방법은 무엇일까. 혼자 답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5·18이 세계화와 현재화를 추구한다면, 용서와 화해의 과정에서 그 보편성과 동시대성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 이번 5·18민주화운동 43주년 행사는 광주뿐 아니라 미국, 일본, 호주, 독일, 베트남, 중국 등 28개 국가 및 도시에서도 함께 개최됐다. 당연히 이들 또한 용서와 화해의 주체일 것이다.

5·18기념재단은 2000년부터 매년 광주인권상을 시상하고 있다. 광주인권상은 5·18정신을 국제사회와 잇는 소중한 통로이다. 홍콩, 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 이란, 동티모르 등 역대 광주인권상 수상자의 국적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사실에서 현재 또 다른 광주 5·18을 겪고 있을 누군가가 있음을 확인한다. 먼 곳, 낯선 이름을 가졌을 이 존재는 그날의 윤상원이나 문재학처럼 자신의 ‘도청’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아주 낯선 이름이 하나 있다. “치유는 저항의 행위이다.” 국제고문피해자재활협회(International Rehabilitation Council for Torture Victims)가 발행하는 2021년 연간보고서의 한 문장이다. 1974년부터 국가폭력(고문)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이 국제단체는 ‘치유와 정의’를 중심으로 의학적, 법적, 심리적, 사회적 지원을 하고 국가폭력(고문) 방지와 인권, 정의를 위해 활동한다. 국가폭력은 폭력의 주체가 국가인 까닭에 신체적, 정신적 피해뿐 아니라 낙인과 차별을 동반하고 빈곤과 가족 해체, 성격의 심대한 변화, 체계적인 사회적 배제 등의 복합적 문제를 낳는다. 국가폭력의 이런 특성을 고려할 때 치유가 저항인 이유가 더 뚜렷해진다. 고문 생존자의 치유는 그 자체로 국가폭력의 집요함과 내밀하게 맞서는 저항의 과정이다. 만일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배상, 명예 회복, 기념사업이 완성됐다 하더라도 국가폭력이 남긴 분노와 우울, 차별과 낙인이 피해자의 삶을 여전히 지배한다면, 과연 정의는 실현된 것일까? 이 단체의 활동은 5·18을 비롯한 형제복지원, 간첩 조작,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녹화 공작과 강제징집 등 우리의 현안과 맞닿아 있다.

이 단체의 통계에 따르면, 국가폭력(고문) 피해자 중 48%가 빈곤을 겪고 있다. 피해자가 빈곤해질 확률도 높지만, 빈곤한 사람이 국가폭력(고문)의 대상이 될 확률도 높다. 빈곤은 국가폭력(고문)이 초래하는 위험 요소이다. 피해자의 효과적인 신체적, 심리적 치유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직업을 포함한 사회경제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배상’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직접적인 배상과 함께 체계적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국제사회가 정한 ‘치유’의 개념이다.

141개국에서 여전히 고문과 국가폭력이 지속되고 있다. 2021년 유엔 총회에 제출된 유엔 특별 보고관(SRT)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폭력(고문)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완전한 처벌 없이 계속 자행되고 있으며, 피해자 또는 친척들은 국제법에 따라 권리가 있는 구제, 배상 및 재활을 거의 제공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5·18의 세계화는 5·18이라는 숫자를 세계에 각인하는 일만은 아니다. 국제적 인권 문제, 국가폭력 및 고문,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해 적극 개입하고 연대하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바깥의 국가폭력과 민주화운동, 인권 옹호 활동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도 5·18을 기념하는 또 다른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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