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초대 법무비서관 핵심 참모 역할
과감없는 의견 개진·인사 원칙 세워
“DJ, 朴 나와 역사 함께 쓸 사람” 극찬
강원랜드·옷로비 등 당시 일화 소개
“DJ, 오직 민주화·용서·화해 실천”
“내년 탄생 100년 큰 정신 발전 기원”

‘4번 구속 4번 무죄’의 전설. 검사 출신이면서 친정인 검찰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던 4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부의장까지 지냈던 박주선(73) 대한석유협회장.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 지지선언을 계기로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대한석유협회장이라는 다소 의외의 자리를 맡았다.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그를 만났다. 윤석열 정부에도 쓴 소리를 하는 원로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한지 1년이 지났다.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DJ의 사람이기도 했던 그에게 내년 DJ탄생 100년을 앞둔 소회는 남다르다. 동서화합과 호남 정치권이 나아가야할 길 등에 대한 그의 소회는 조용하지만 거침이 없었다. 대안 제시는 날카로웠지만 절제된 단어들이다. 상·중·하 3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은 중편으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돼 근무했던 일화 등을 소개한다.
-DJ정권 법무비서관에 발탁됐다
▶내가 초대 법무비서관으로서 DJ를 모셨는데, DJ가 대통령 후보시절 전임 정부의 민정수석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돼 민정수석제 폐지를 공약했다. 민정수석제는 폐지하지만 민정수석의 역할과 기능은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해 ‘법무비서관’이라는 명칭으로 민정수석을 사실상 유지하게 됐다. 당시 법무비서관은 현재의 인사수석도 겸하는 위치와 역할이었다. 1998년 2월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DJ와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 어떻게 발탁됐나 신기할 따름이다. 나중에 청와대에 들어가서 보니 김중권 DJ 비서실장이 DJ가 내 이름을 직접 거명을 하며 ‘이 사람을 법무비서관으로 데려와야 되겠다’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법조계의 의견을 청취해 보라 지시하셨다고 한다. 김 비서실장이 현역 법조인 10명을 만나 ‘법무비서관 후보자를 발탁하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괜찮겠냐’물었더니 10명 중 8명이 나를 추천했다더라.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고, 민주 투사로 정권을 교체시키는데 역할을 했던 DJ를 잘 모르기 때문에 혹시 권위주의적이거나 독선과 아집이 강한 분이 아니겠나 생각했다. 그렇다면 민정수석의 역할로 그분을 보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언론에서 내 이름이 거론될 때 ‘나는 안 가겠다’고 기자들에게 여러 번 이야기 했다. 또 김 비서실장이 직접 나한테 전화를 해 ‘DJ의 뜻이 이러하니 훌륭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청와대로 들어와 근무를 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와 ‘검찰에 있으면서 훌륭한 DJ정부의 검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DJ를 돕고싶다’며 사양한다고 전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검사직을 그만두느냐, 청와대로 가느냐 기로에 섰다. 주변 많은 분들이 “‘50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는데, 박주선 처럼 바르고 옳고 정의감 있는 사람이 가서 50년 평화적 정권 교체의 시작과 마무리를 제대로 할 수있도록 대통령을 보필하는 것도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냐’며 권유했다. 특히 검찰 조직 내에서 절대적으로 가야한다고 당시 검찰총장 등의 강권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수락하게 됐다.

-법무비서관으로서 수행했던 업무는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로서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더 옳고 더 바른 판단을 하실 수 있도록 주저하지 않고 내 의견도 개진했고 토론도 했다. 그런 점에서 DJ가 나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큰 총애도 주셨다. 당시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50년 만에 처음 정권이 바뀐데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했다고 할 정도로 최악의 상태였다. 실업률은 최고로 높았고, 사회적 빈부격차는 날로 커져만 갔다. 통합된 대한민국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데, 내가 담당하는 인사 분야부터 모범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DJ를 당선 시키는데 기여했던 공로는 뒤로하고, IMF를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극복하고 종식 시킬 수 있는 인물의 발굴 추천을 최고의 인사 원칙으로 세우고 대통령 인사를 보좌하는 일을 했다. 출마를 네 번이나 했던 DJ를 당선시키는 데 정말로 기여했고, 역사적으로 평가 받아야할 정치 세력들은 동교동계다. 그분들은 한이 맺혀 있다. 번번히 좌절되고, 심지어 DJ가 사형 선고까지 받아, 사형수가 되어 망명, 정계 은퇴 선언 등 그런 상태에서도 다시 불씨를 살려 네 번째 출마로 대통령을 만들어낸 세력이 동교동계다. DJ만들기, 평화적 정권 교체에서 그들이 했던 희생적 역할과 헌신은 평가해야한다. 다만 그분들은 DJ만 당선되면 여느 정부와 마찬가지로 장·차관 등 주요 요직의 간부가 될 것이라 기대를 했을 것이다. IMF 정국에서 50년만에 정권 교체된 나라에서 그분들 위주로 인사를 하게 되면 대통령에게 비난이 쏟아질 것이 불보듯 뻔했다. 대통령께 건의해 인사 원칙은 반드시 능력과 자질, 전문성, 자세를 최우선 고려하고 평가해 추천드리겠다고 했다. DJ께서 그렇게 해야한다고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 DJ와 관련된 특별한 일화는
▶DJ가 훌륭한 것은 특정인을 어느 자리에 인사하라 지시하신 일이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보고를 하러 가면 당과 잘 지내라는 이야기만 하셨다. 한 번은 강원랜드 사장 후보 안을 만들어 보고 드리기 전인데, 모 장관이 찾아와 ‘대통령이 A씨를 강원랜드 사장으로 시키라 말씀이 계셨다’ 고 하더라. DJ 망명시절 도움을 준 인사였다. 검증을 해보니 대통령에게 자칫 누가 될 수도 있는 점이 발견됐다. 대통령께 A씨 관련 보고를 하니까 DJ는 ‘그 사람, 바른 사람이에요. 빨리 시키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 때 김홍일 의원한테서 들었던 DJ의 제스처가 나왔다. 김 의원이 ‘아버님이 독특한 제스처가 있으신데, 두 손으로 얼굴을 두 번 쓰다듬고 두 귓볼을 잡아당기고, 이마를 두번 닦으면 아직까지는 그의 주장이나 견해를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고 알려줬다. 그날 처음으로 DJ께서 제스처를 하셨다. ‘다시 한 번 재고 해달라’ 했지만, ‘시키세요’ 였다. 다음날 DJ는 청남대로 휴가를 가셨다. 휴가 중 전화를 하셔서 강원랜드 사장 임명 관련 보고를 다시 한 번 하라고 말씀하셔서 전날 보고 내용을 다시 보고 드렸더니 ‘왜 이런 문제가 있는 데 장관은 보고를 안한 것이냐’ 물으시더라. ‘장관 입장에서는 국가원수이자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보고는 드리기 어렵다. 그래서 비서가 필요한 것 아니겠냐’고 얘기했다. 결국 DJ는 강한 의지를 철회하셨다. 인간적으로 마음이 아쉬웠을 것이다. 다음날 A씨를 수소문해 ‘칠흑같이 어두운 상황에서 대통령을 만드는 데 고생하셨지만, 강원랜드 사장에 가려고 한 것은 아니였지 않았냐. DJ와의 관계가 부각되면 불미스런 상황이 올수 있다. 대통령 마음 편하게 당신이 스스로 DJ께 강원랜드 사장을 사양하겠다는 말씀을 좀 해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다. A씨는 ‘대통령께 누가 된다면 절대 안가겠다’하더라. 좋은 분이었다. DJ가 휴가를 다녀와서는 활짝 웃음을 지으며 ‘그 사람 말요, 안 간대요 안 가’라고 하시면서 좋아하더라. 그만큼 마음의 빚이 컸던 것 같다. 대통령 마음 편하게 아무나 인사를 해선 안된다. 그 신념과 원칙에 충실했다. 국가 원수가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그걸 받아주신 DJ는 정말로 훌륭한 분이다.
또 하나는 옷로비 의혹 사건 조사 결과를 가지고 DJ께 보고했다. 그 전에 대통령께 말씀드리지 않고 부인 이희호 여사를 먼저 뵙고 일부 사실관계 확인을 했다. 대통령은 ‘집사람도 조사했어요?’라고 놀라시며, 그 자리에서 이 여사께 전화를 걸어 ‘법무비서관한테 조사받았어요? 왜 그 얘기 안했어요’라면서 웃으시더라. 조사해 보니 문제의 옷가게에 옷값이 싸서 몇번 맞추러 간 적 있고 DJ 당선 후에 사장이 축하한다면서 밍크 코트를 선물한다길래 ‘나이가 있어서 무거운 걸 입을 수 없다’고 하며 거절하셨다고 했다. DJ께서는 수석비서관들과 만찬 자리에서 나를 ‘나와 역사를 함께 쓸 사람’이라고 분에 넘치는 평가를 해주셨고 어느 날 대통령 관저로 오라는 말씀이 계셔서 갔더니 이 여사님과 함께 오셔서 ‘박주선은 소신을 가지고 직언을 해주니 너무 고맙소. 은혜를 잊지 않을 터이니 꼭 이런 자세로 나를 도와주시오’라고 말씀하셔서 내가 ‘비서에게 국가원수께서 은혜를 말씀하심은 너무 과분하십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당신에게 은혜를 입고 있어요’라고 거듭 극찬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내년이 DJ 탄생 100년이다
▶그 분을 존경한다. 논리에 합리가 있고 사심이 없다. 어떤 날은 보고를 드리러 갔다가 DJ와 1시간 넘게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결국 DJ는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그렇게 해’라고 했다. 이후 김 비서실장이 내 방으로 와서 ‘여러가지 보고를 했다죠. 앞으론 대통령 연세도 있고 하시니 시간을 단축해 주면 안될까요’라고 하더라. 김 실장이 보고 중 대통령께서 하품을 하셔서 ‘피곤해 보이신다. 다음에 보고드리겠다’고 했더니 DJ가 ‘그래요. 박주선한테 시달렸다’라고 하셨다더라. DJ는 사형 선고를 내린 세력도 용서 하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치 활동 기간 내내 가택연금과 구속을 했고, 반 김대중 세력인 김종필씨와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통해 정권을 교체를 이뤄냈다. DJ는 자신을 사형선고 했던 전두환 신군부세력도 사면을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요청해 사면을 하고 용서하여 화합을 이루고 큰 정치를 하신 분이다. 분열된 국민으로는 국가발전도 남북통일도 이룰 수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DJ기념재단을 강화해 탄신100주년 상징적 행사도 하면서 오로지 국가의 민주화와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신 DJ의 큰 정신이 더욱 발전되길 기원한다.
서울/임소연 기자 lsy@namdo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