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간채(바른역사시민연대 상임대표, 전남대 명예교수)

 

나간채 전남대 명예교수

엊그제 들은 바에 따르면, ‘전라도천년사’ 별책부록 인쇄작업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다. 기존의 34권에 더하여 35권을 별책으로 추가하는 방법이다. 아울러 이 결과를 신속히 배포하여 사업 종료를 급히 서두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전라도천년사 비판운동을 주도해 온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편찬위원회의 방식이 연구윤리와 일반 상식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엄중 지적하고자 한다.

부록이란 본문에서 다루지 못하거나 빠뜨린 것을 후미에 덧붙여 서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록의 내용은 본문의 일부분으로써 이론과 기본명제 및 구체적인 내용과 합치되고 보완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러나 현재 전라도천년사의 부록에 담긴 내용에는 한국사에서 기본전제가 되는 사관이나 이론 개념 등 핵심적으로 중요한 사항에서 상반되고 논란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으로 사료된다(전체를 밝히지 않았으니 자세히는 모르고 있지만). 이러한 내용을 부록으로 처리하는 것은 일종의 부당한 편법으로써 연구윤리나 출판규범에 맞지 않다. 부록이란 기본적으로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설명을 추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부록은 대개 한권의 책 후미에 추가하는 것이 상례인데, 각권 후미에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별책으로 낸다는 것은 또 새로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34권에 대한 부록을 한 권으로 묶어 내 놓으면 실제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겹치지 않게 한 권씩만 보게 되어야 별책활용이 가능하게 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별책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그리고 부록을 만드는 절차에 문제가 있다. 157건의 이의제기와 문제점이 지적되었으면, 이 내용이 정리되어 공표되고 대중적 공론화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충하는 이견에 대한 토론이 거듭되어 그 차이를 이해하여 공존하거나 다른 한편으로 합의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토론되어야 할 것을 그냥 책으로 냄으로써 대중들에게 불필요한 혼란과 소화불량을 자아내는 결과를 갖게 될 수 있다.

이 책은 학술적 연구서가 아니라 대중을 위한 역사서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중용 사서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론이나 상세한 학술적 토론보다는 학계에서 합의하여 정립된 기본방향, 사실관계,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알기 쉽게 맥락을 잡아 정리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지나치게 구체적인 내용을 장황하게 다루고 있는 반면에 역사의 흐름에서 드러나는 지역사의 특성에 대한 차분한 해석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논문형태의 서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출판위원회의 과업이행 과정을 보면, 기존의 연구자나 학자들이 발전시킨 학술적 양심이나 윤리적 정직성에 대하여 의문을 금할 수 없다. 이를테면, 지난 7월 27일 ‘남도일보 토론회’에서 이 책이 이미 인쇄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때까지도 밝히지 않았다. 연초에 인쇄하여 창고에 숨겨놓고 일부는 배포되거나 판매되었다가 다시 회수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시민들은 여러 토론을 통해서 내용이 수정되어 출판되리라고 믿고 있었다. 필자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 이 연구자 집단의 윤리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사실을 토론회에서 토로한 사실에 대해서 그들은 미안함, 부끄러움이나 양심 가책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학자집단에서 다소 의외의 현실이다. 나라를 위하여 가장 우선적인 것이 지식인의 기개라는 점을 이미 오래 전부터 강조돼었다. 고려 말 이암 선생의 지적이다. 지식인의 책무가 중요한 만큼 자기성찰이 더 엄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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