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불패신화
한국시리즈 12전 12승

지난 28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2024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승 1패의 기록으로 통합 우승을 차지한 KIA 타이거즈 선수단이 기뻐하고 있다. /KIA타이거즈 제공
◇V1…타이거즈 우승 역사 출발
1983년의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와 후기 우승팀 MBC 청룡의 대결로 펼쳐졌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김응룡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맞이한 해태는 전기리그를 30승 1무 19패(0.612)로 마치며 일찌감치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에이스 이상윤, 김용남 등의 투수진과 김봉연, 김성한, 김일권, 김준환 등의 KKK타선이 MBC와 맞섰다.
MBC는 해태에서 사령탑을 맡았던 ‘빨간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과 하기룡, 이길환 등 마운드와 김재박, 이광은, 이종도, 김인식 등으로 구성됐다.
두 팀의 한국시리즈는 장타력의 해태와 기동력 MBC 간의 대결이 됐다.
당시 고른 투수력, 짜임새 있는 수비를 자랑하던 MBC의 우세 속에 맞이한 한국시리즈는 첫판부터 그 예상이 빗나가며 타이거즈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진행됐다. 타이거즈는 1차전 초반부터 거세게 MBC를 몰아 세웠고, 4승 1무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MBC를 제압하며 대망의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던 김봉연은 불굴의 의지로 재기에 성공하며 한국시리즈에서 홈런 1개를 포함해 19타수 9안타 8타점을 기록,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V2…‘타이거즈 왕조’ 서막을 열다
1986년 ‘해태 왕조’의 본격적인 서막이 열렸다. 타이거즈는 해당 시리즈 우승으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팀이 됐다.
당시 제7구단 빙그레의 출범과 함께 팀당 108게임으로 모두 378게임이 치뤄졌다. 전후기로 나뉘어 상위 2팀에게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주어지는 새로운 경기제도가 마련됐다.
타이거즈는 페넌트레이스 기간 내내 투타에서 안정된 조화를 보이며 꾸준한 성적을 유지했다. 이에 전·후기리그 2위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모두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 자체를 없애버린 삼성라이온즈와의 맞대결로 영호남 라이벌전이 시작됐다.
해태는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과 신예 투수인 좌완 김정수, 우완 차동철이 마운드를 굳게 지켰다. 또 노장 김봉연이 82년 이후 4년 만에 3할 타자로 복귀했으며 김종모, 한대화 등 타선이 폭발했다.
삼성은 김시진, 김일융, 이만수, 김성래, 장효조 등 스타선수들을 거느린 초호화 군단을 갖췄으나 힘겹게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올라온 탓에 타이거즈의 적수가 되기엔 너무 역부족이었다.
두 번의 연장전과 5경기 모두 3점차 이내의 치열한 접전 끝에 해태는 4-1로 월등한 경기력을 뽐내며 두 번째 우승을 거뒀다.
MVP는 시리즈 3승을 거둔 김정수가 차지했다.

◇V3…프로야구 역사상 첫 2연패 달성
프로야구 역사상 첫 2연패와 첫 한국시리즈 전승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시리즈다
전년도 우승팀인 타이거즈는 1987년 2년 연속 우승 도전에 나섰다. 해태는 고된 한 해를 보냈다. 전기리그를 2위 OB 베어스에 3.5게임차로 뒤진 3위로 마감하며 PO 진출권을 헌납했고, 후기리그에서도 시즌막판까지 고전했다. 후기리그 막판 삼성과의 2연전을 모두 이기며 단 한 게임 차로 후기리그 2위를 차지하며 1987년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삼성은 팀 타율 3할, 팀 홈런 105개로 전·후기 우승을 차지하며 시리즈에 진출했다.
천신만고 끝에 플레이오프 티켓을 손에 넣은 해태의 전력은 허약해보였으나 그 예상은 1차전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해태는 1차전 상대 실책과 한대화의 2점홈런으로 먼저 리드를 잡았고 선발 김대현이 호투하며 시리즈 첫 승을 거뒀다. 2차전 김정수, 3차전 신동수, 4차전 김대현이 연달아 출격하며 삼성을 4-0으로 무너뜨렸다.
MVP는 한국시리즈 4차전 동안 무려 12타수 6안타(2홈런) 4타점의 눈부신 활약을 펼친 김준환이 선정됐다.

◇V4…전후기 한국시리즈까지 통합우승
1987년까지 3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린 해태는 앞선 우승이 제도의 허점 덕이라는 평가 절하를 경험했다. 그러나 1988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한국시리즈까지 압도적인 전력차로 우승하며 그 평가를 완전히 뒤집었다.
처음으로 빙그레 이글스와 한국시리즈에서 마주한 해태는 4승 2패로 승리를 거뒀다.
1차전부터 전력으로 나선 해태는 에이스 선동열이 7.1이닝 동안 14개의 탈삼진을 솎아내는 무시무시한 투구를 선보이며 빙그레의 전의를 상실시켰다. 2차전은 이순철의 결승타에 힘입어 6-5로 승리한 해태는 3차전까지 선점했다. 4~5차전을 내리 내주며 분위기가 넘어가는 듯 했지만 6차전서 문희수가 9이닝 3피안타 1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빙그레의 추격을 뿌리쳤다.
시리즈 MVP는 2승1세이브를 거둔 문희수의 몫이었다.

◇V5…KS 4연패 금자탑
1989년 해태는 1988년에 이어 또 다시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를 만났다.
정규시즌 2위로 PO에 진출해 태평양돌핀스를 2대 0으로 가볍게 제압한 해태는 경기감각을 유지하며 빙그레와 맞붙었다.
이 시리즈는 해태가 1차전에서 패한 유일한 시리즈다. 에이스 선동열이 나섰지만 이강돈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맞는 등 전체적으로 부진했다. 0-4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해태는 위기감이 엄습했으나 2차전부터 5차전을 모두 쓸어담으며 이는 기우라는 것을 증명했다.
선동열도 5차전서 승리투수가 되며 1차전에서 구긴 자존심을 회복했다. 시리즈 MVP는 18타수 8안타로 맹타를 휘두른 박철우가 선정됐다.

◇V6…빙그레와 맞대결
1991년 해태는 1988년과 1989년에 이어 세 번째로 빙그레와 한국시리즈 맞대결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승자는 변함없이 ‘해태’였다. 빙그레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해태 공포증에 시달릴 만했다.
심지어 이번엔 4승무패 완벽한 셧아웃으로 해태의 승리였다.
해태는 이번에도 1차전부터 빙그레를 압도했다. 선동열이 9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지만 한대화의 홈런과 장채근의 적시타를 앞세워 9-4로 이겼다.
2차전부터 김정수, 문희수, 다시 김정수를 앞세운 해태는 6번째 우승 금자탑을 쌓았다. MVP는 15타수 7안타 8타점으로 활약한 장채근이다.

◇V7…‘바람의 아들’ 이종범 등장
‘스타군단’ 해태에 또 1명의 별이 탄생했다. 바로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다.
이종범은 그 해 정규시즌 타율 2할8푼 16홈런 73도루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볐다. 장소를 바꿔 한국시리즈에서도 그의 활약은 계속됐다.
1993년 양준혁의 삼성과 맞붙은 이종범의 해태는 결과적으로 그해 4승 1무 2패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신승을 거뒀다. 1차전을 먼저 잡은 해태는 이후 내리 연패를 당하며 1승 1무 2패로 밀렸다. 부진했던 해태의 부활 신호탄은 이종범의 발이었다. 5차전부터 그린라이트를 부여받은 이종범은 3경기에서 무려 7번의 베이스를 훔치는 등 팀 우승에 기여하며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V8…선동열·김성한 없어도 강팀
1996년을 앞두고 해태는 전문가들로부터 우승권 밖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선동열이 일본으로 떠났고 타선의 핵이었던 김성한도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 이종범과 이대진도 방위병 복무로 인해 시즌 초반 전력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러나 해태는 이 해 일부 스타플레이어에 기대는 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강팀으로 군림해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강철, 조계현, 임창용, 홍현우 등의 선수들이 둘의 공백을 메우며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는 1차전부터 3방의 홈런과 이대진의 호투로 8-3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다. 2차전은 조계현과 정민태의 명품 투수전이 열렸고 해태가 1-2로 패전했다.
3차전에서 승리한 해태는 4차전에서 전무후무했던 한국시리즈 노히트노런을 정명원에게 당하며 시리즈 분위기를 넘겨주는 듯했다. 그러나 5차전과 6차전을 내리 잡으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시리즈 MVP는 2승 1세이브를 차지한 이강철이 선정됐다.

◇V9…해태의 마지막 우승
1997년 해태는 정규시즌에서 75승 1무 50패 승률 0.599로 2위 LG트윈스에 1.5경기차 앞선 1위를 차지했다.
해태의 마지막 우승으로 기억되는 이 시리즈는 ‘이종범’이 장식한 시리즈였다. 정규시즌에도 타율 3할2푼4리 홈런 30개 도루 60개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작성한 이종범은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 2할9푼4리 3홈런 6득점 4볼넷 2도루로 맹활약을 펼쳤다. 이종범은 이 활약과 함께 IMF로 어려웠던 구단의 자금사정 등으로 인해 1998년부터 일본 주니치로 진출했다.

◇V10…‘해태에서 KIA로’ 재탄생
IMF로 구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해태는 2001년 KIA에 구단을 매각하며 타이거즈는 새 주인을 찾게 됐다.
KIA타이거즈는 해태와 다른 막강한 자금력으로 FA영입 등 전력 강화에 힘을 썼지만 2000년대 중반 낯선 성적으로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KIA는 2005년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2009년만큼은 달랐다.
C(최희섭)K(김상현)포의 타선과 아퀼리노 로페즈-릭 구톰슨-윤석민-양현종 등으로 이어지는 마운드가 정규시즌을 지배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SK와이번스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10번째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MVP는 7차전에서만 2개의 홈런을 터트린 나지완이 뽑혔다.

◇V11…리그를 지배한 막강타선
KIA는 2017년 팀 타율 3할2리에 홈런 170개 등을 때려낸 타선을 앞세워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안착했다.
마운드는 ‘20승 듀오’ 헥터노에시와 양현종 등으로 막강 전력을 구축했다.
상대는 3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두산베어스였다. 실전감각이 올라오지 않은 KIA는 1차전서 두산에 3-5로 패하며 불리한 상황속에서 시리즈를 시작했다.
2차전에서 양현종의 1-0 완봉승으로 분위기를 가져온 KIA는 3차전부터 펫딘, 임기영 등 선발진의 호투로 시리즈 전적 3-1로 절대적 우위를 점했다.
5차전에서 이범호가 만루홈런을 터트리며 초반 기세를 잡았다. 9회 초 1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양현종이 박세혁과 김재호를 돌려세우며 11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MVP는 1승 1세이브 10이닝 무실점 1실점을 차지한 양현종이 선정됐다.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