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에 비분 ‘국권회복’ 항쟁하다 순국
고경명 12세 손…1848년 창평서 태어나
을미왜란 후 국모 원수 갚기 위해 거병
순창·동복분파소 등 습격 일제 간담 서늘
1907년 구례 연곡사서 적의 야습으로 전사
정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왕대밭에 왕대 나다
고광순(高光洵, 1848~1907) 의병장은 장흥고씨로 전남 담양 창평에서 태어났다. 호는 녹천(鹿川·鹿泉)이다. 녹천은 임진왜란 때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의병장의 둘째 아들인 인후(因厚)의 사손(嗣孫)이다.
을미왜란(1895) 후 녹천은 기우만(奇宇萬), 기삼연(奇參衍) 등과 국모의 원수를 갚을 ‘국수보복(國讐報復)’의 방략을 의논하고, 음력 2월 그믐을 기해 의병들을 광주에 모이도록 했다. 그러나 4월 9일(음력 2월 27일), 기우만 의병장이 선유사 신기선(申箕善)의 선유로 의병을 해산했지만 녹천은 비분강개해 영호남으로 다니며 민중을 격려하기도 하고, 혹은 눈물로 호소하면서 동지를 규합했다.

◇을사늑약 이후 호남의병과 녹천의진
1906년 6월, 최익현(崔益鉉)이 태인에서 거의했으나 며칠 만에 관군에 피체됐고, 일제에 의해 ‘소요죄’로 대마도에 구금됐다. 이어 광양에서 백낙구(白樂九)가 ‘국권회복(國權恢復)’의 기치를 들었으나 군세가 미약해 체포되고 말았다.
녹천은 1907년 1월 24일(음력 12월 11일) 창평에서 거의해 전투력을 기르고 있을 때 양한규(梁漢奎)가 설날을 기해 함께 남원성을 공격하자는 제안을 하자 의진을 거느리고 남원으로 향했으나 이미 하루 전에 남원성을 점령한 양한규 의병장이 전사하는 바람에 물러났다.
녹천은 1907년 8월부터 대규모 거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김동신(金東臣)이 의병을 이끌고 찾아오자 함께 9월 10일 순창분파소와 우편취급소를 습격했고, 9월 15일에는 동복분파소를 습격했는데, 이는 호남에서 본격적인 의병투쟁의 계기가 됐다.
9월 17일 녹천의진은 경남 하동 화개동으로 들어가 유진하자 전남 동복·순천·곡성·광양·구례, 경남 거창·안의·하동의 의병까지 몰려들어 그 수는 약 1천 명에 이르자 10월 17일(음력 9월 11일) 일제는 인근의 수비대는 물론, 진해만 중포병대대까지 동원해 녹천·김동신 의진을 공격했다. 마침내 녹천을 포함한 의병 수십 명이 순국하고, 다수가 부상하고 말았다.

#진해만 중포병대대(鎭海灣重砲兵大隊)에서 파견된 진주파견대는 10월 4일 야마다(山田) 소위가 인솔하는 1소대를 산청·안의 방면으로 파견하고, 남원수비대는 하사 이하 12명을 안의 방면으로 급행시켜 그와 책응케 했다. 야마다 소대는 8일 오후 거창 서북방 약 60리 지점인 월성에서 폭도 약 300명과 만나 그 수십 명을 사상(死傷)시키고 서방으로 달아나게 했다. (중략) 진주파견대장 오야마(小山) 대위는 하동 방면을 정찰한 결과 폭도 약 300이 칠불사·연곡사·문수동에 있음을 알고 16일 화개장에 이르러 광주수비대장 키노(木野) 대위가 인솔하는 1소대와 연락하고 17일 새벽 연곡사를 포위 공격해 수괴(首魁:의병장-필자 주) 고광순 이하 22명을 사살하고 수십 명을 부상시키고 연곡사는 소각했다.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3. 711~712쪽

녹천이 순국한 지 며칠이 지나서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연곡사를 찾았다. 그는 녹천 무덤 앞에서 목 놓아 통곡하며 추모시를 읊었다.
#연곡의 수많은 봉우리 울창하기 그지없네.
나라 위해 한평생 숨어 싸우다가 목숨을 바쳤도다.
전마(戰馬)는 흩어져 논두렁에 누워 있고
까마귀떼만 나무 그늘에 날아와 앉는구나.
나같이 글만 아는 선비 무엇에 쓸 것인가!
이름난 가문의 명성 따를 길 없네.
홀로 서풍을 향해 뜨거운 눈물 흘리니
새 무덤이 국화 옆에 우뚝 솟았음이라.
임진왜란 때 무공으로 최고의 시호인 ‘충렬(忠烈)’을 받은 사람은 두 분이다. 한 분은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또 한 분은 전 동래부사이자 의병장 고경명! 그는 송상현과 함께 문신이었지만 무공으로써 충렬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의 12세손 녹천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가 아니랴!
정부는 그의 공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국가보훈부는 광복회와 독립기념관 공동으로 ‘이달의 독립운동가’(2002년 10월)로 선정했다.

이태룡(국립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장/문학박사)
정리/오승현 기자 romi0328@namdo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