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현(남도일보 사회부장)

 

오승현 남도일보 사회부장
오승현 남도일보 사회부장

지난 1년간 광주의 의료 현장은 한마디로 ‘버티기’였다. 지난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이후, 광주 지역의 상급병원은 필수 의료 위주로 비상체체를 운영하며 겨우 의료 공백을 막아왔다.

하지만 장기간 지속된 의료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피로 누적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남아있는 의료진들은 극도의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으며, 병원 운영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광주의 핵심 의료기관인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에서만 332명의 전공의가 떠났다. 기독병원 등 2차 의료기관까지 포함하면 370명 이상이 의료 현장을 이탈했다. 문제는 이 공백이 단기간 내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직한 전공의들은 다른 지역에서 개업하거나 일반의로 재취업하고 있으며 신규 전공의 충원도 미미한 수준이다. 이로 인해 병원은 응급·중증 환자 위주로 의료진을 재배치하며 필사적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전남대병원은 성형외과, 비뇨기과 등의 병동을 4개 이상 폐쇄하고 해당인력을 응급실과 중환자실, 심혈관내과 등 필수 부서로 이동시켰다. 조선대병원도 내과 계열 병동을 통합 운영하며 응급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의료진의 피로 누적은 심각한 수준이다. 전공의 이탈 이후에도 남아있는 의료진들은 극한의 근무 강도를 견디며 병원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수술과 응급실 운영에도 점차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모두 수술 건수를 줄였으며, 병상 가동률은 30% 이상 감소했다. 특히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이탈로 인해 응급 수술이 더욱 어려워졌고, 기존 마취과 전문의들의 과로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응급실 운영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현재 두병원의 응급실은 24시간 운영되고 있지만 위중증 환자 위주로만 수용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응급 환자는 2차 의료기관으로 전원조치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의료계에서는 광주의 주요 병원들도 세종충남대병원처럼 응급실 단축 운영을 고려해야 하는 시점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의료진 부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병원의 재정난도 가중되고 있다. 의료진이 부족하다 보니 응급·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외래 진료와 병동 운영이 줄어 든 것이 주요 원인이다. 전남대병원의 경우 지난해에만 677억원의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선대병원 역시 매달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사직한 전공의들이 지역을 떠나면서 광주·전남 지역의 인프라 붕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의원급으로 재취업한 사직 전공의 3천23명 중 광주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단 59명에 불과하다. 이는 필수 의료 인력의 지역 쏠림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제 광주지역의 의료체계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더이상 의료진의 헌신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부와 의료계는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라는 단편적인 정책만이 아니라 의료 인력의 지역 균형 배치,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그리고 공공의료 시스템 보완 등이 필요할 것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인력 여건상 상급종합병원은 생사가 달린 환자들에게만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처럼 의료진을 필수 진료과 위주로 재편하며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2차 의료기관이 역할을 분담한다고 해도 숙련된 의료진이나 장비 부족으로 인해 결국 타 지역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하는 상황이 반복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더 이상 의료진의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의료진의 처우개선과 함께 지역 의료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필수 의료 붕괴가 현실화 될 수 있다. 의료 체계의 근본적인 개혁과 지원이 시급하다.

국민의 생명권은 흥정 대상이 아니다. 정부와 여야의정협의체는 헌법에 보장된 생명권이 침해 받지 않도록 신속한 의료공백 해소책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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