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남도일보 지역사회부장)

 

박형주 남도일보 지역사회부장

한비자의 ‘세남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먼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잘생긴 청년이 있었다. 그는 외모 덕분에 당시 국왕인 영공의 총애를 받으며 시중을 들었다.

그는 어느 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어명이라 속이고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이는 임금의 물건을 건드린 것으로 당시 발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을 만큼 심각한 일이었다. 평소 미자하에 대해 벼르고 있던 신하들이 이때다 싶어 그를 벌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 그러나 영공은 오히려 "큰 벌을 받는다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머니께 달려갔으니 얼마나 효자인가"라며 그를 두둔했다.

또 어느 날은 미자하가 임금을 수행하며 과수원에 갔다가 복숭아를 하나 따서 먹었는데, 그 맛이 달고 뛰어나자 먹던 것을 그대로 임금에게 주며 먹으라고 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신하들은 ‘감히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군주에게 올렸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공은 또 "과인을 위하는 마음이 이렇게도 지극하구나. 자기 입은 생각하지 않고 내게 주다니!"라며 오히려 칭찬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자하도 나이가 들고 미색이 변하여 임금의 총애도 함께 식어갔다. 간간이 꾸지람도 듣게 됐다. 그러다 결국 임금은 이렇게 말하면서 미자하를 궁에서 내쫓아 버렸다.

"이 놈은 일찍이 나를 속이고 내 수레를 몰래 타고 궁궐 밖으로 나갔고, 심지어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네게 들이밀던 놈이다."

그저 시간이 지나 외모만 바뀌었을 뿐인데 같은 행위를 놓고 같은 사람이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 권한을 침해한 위법행위라고 국회의 탄핵 의결을 인용 결정했다. 헌재는 이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국회 권한침해 확인 부분을 인용했다. 헌재는 "국회가 갖는 재판관 3인의 선출권은 헌재 구성에 관한 독자적이고 실질적인 것으로, 대통령은 청구인이 선출한 사람에 대하여 재판관 임명을 임의로 거부하거나 선별하여 임명할 수 없다"고 인용 결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약 한달 지난 뒤인 지난 24일 헌재는 같은 성격의 사건에 대해 다른 입장을 냈다. 헌재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사건을 기각했다. 국회가 한 총리를 탄핵한 사유 5가지 가운데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거부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 총리의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고 봤던 측에서는 앞서 헌재가 마은혁 재판관 미임명 대해 내린 판단에 따라 한 총리 사건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위헌 결정을 내릴 것으로 봤다.

그러나 만장일치였던 앞선 판단과 달리 헌재 재판관들의 판단은 갈갈이 찢겼다. 재판관 8명 가운데 4명만이 위헌 판단을 내렸다. 김복형 재판관은 위헌도 아니라고 했다.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임명 의무는 ‘상당한 기간 내’에 행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즉시’ 임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권한대행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다.

헌법과 법률에도 위배되고 파면 사유로도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은 정계선 재판관이 유일했다. 정 재판관은 "헌재가 담당하는 정상적인 역할과 기능마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드는 헌법적 위기상황을 초래하는 등 헌법 및 법률 위반의 정도가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하다"며 탄핵 인용 의견을 냈다.

미자하 이야기는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의 여도지죄(餘桃之罪)라는 사자성어를 남겼다. 하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에도 자주 인용된다. 미자하는 나이가 들어 미색을 잃어 왕의 마음이 달라졌다고 한다지만,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달라진 지난 한달 동안은 무엇이 달라져 재판관들의 마음이 달라진 것일까?

도올 김용옥 선생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에서 "현재 헌재 재판관 8인은 사람이 아니라 나라의 존망을 결정하는 초월적인 존재, 즉 신(神)"이라고 했다. 부디 ‘헌재의 신’들이 이념과 진영에 흔들리지 않고 헌법 정신에 입각해 일관되고 상식적인 판단으로 풍전등화같은 대한민국의 질서를 하루 빨리 바로 잡아주기를 기대한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