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석(전남대학교 사학과 강사)

한국의 역사가 다른 문명권과 구별되는 영역이 있다. 주택의 바닥 난방 시설이다. 난방이 한국 주택 문화를 이끌었다. 지금의 난방 구조를 갖춘 아파트로 발전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국민 태반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바로 이 건축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주택관리사’라고 가르친다. 깔끔한 시험 문제와 답안이다.
왜냐하면, 신라 시대 최고위층 소수 몇 사람만의 의사결정 기구인 화백회의 수장인 상대등을 시험 문제로 출제하는 것만큼, 정작 지금 우리가 사는 주택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를 관리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의식주라는 세 줄기의 흐름으로 발전했다. 인류의 역사가 의식주의 역사였다.
불을 이용해서 생것을 익혀 먹음으로써 우리는 진화했다. 따뜻한 곳에 살았던 인류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 이동과 기후 변화로 추운 곳에서 살았던 그들의 후예는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의류는 변화를 거듭하면서 옷에 색깔을 입혔고, 또 그 재질로 신분제 질서를 다졌다. 집은 동굴에서 움막으로 변화를 거쳐, 수직 기둥과 대들보 위에 초가지붕을 얹어 실내 바닥 난방 시설로 발전했다. 이 놀라운 난방 시설은 한반도를 비롯해 지금의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망라했다. 북쪽 기마문화와 남쪽 농경문화를 엮어준 것은 바로 바닥 난방이었다. 이러한 난방 문화는 요령의 요하강 넘어 중국과 달랐고, 바다 건너 일본과도 비교되는 색다른 문화공동체를 이뤄냈다.
우리 역사가 다른 문명권과 다른 지점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흔적은 청동기와 고인돌 유적, 그리고 난방 문화에서 찾아진다. 산세가 우거지고 수려한 한반도의 지리적 여건은 수평적 집짓기보다 수직으로 이어서 같은 땅 넓이 대비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파트로 집짓기가 훨씬 유리했다. 당연히 난방 시설은 옛것 그대로 바닥에서 이루어졌다. 현관에서 침대까지 신발을 신고 출입하는 서양의 아파트와 달리, 우리식 바닥 난방 아파트는 애초부터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훨씬 위생적이다. 아파트의 급배수시설뿐만 아니라 전기·소방 시설, 그리고 정보통신시설을 갖춘 이 구조물은 최첨단 종합 건축물로 발전하고 있다.
아궁이 위 큰 솥 하나는 밥을 짓고, 다른 솥은 국을 끓이고 나물을 데쳤다. 아궁이를 통해 음식을 만들고, 방 구들장을 데웠다. 아궁이는 난방과 음식 요리 등 다목적 기능에 최적화됐다. 그래서 땔나무는 중요했다. 땔나무는 굶주림과 추위를 극복해줬던 생존 도구였다. 대신 뒷동산은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각종 산사태와 홍수는 땔감 수확 때문이다. 지금의 푸른 산은 땔나무가 연탄에서 석유로, 나중에는 가스로 바뀌면서야 가능했다.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난방 원료 변천 속도는 더 빨라졌다. 이제 가스와 전기는 땔감을 대신해 요리와 난방 등 여러 기능을 도맡았다.
우리의 삶에서 아파트는 중요해졌다. 한국의 주택은 온통 아파트로 지어졌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한국을 방문하여 하룻밤을 지냈다. 아침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고, 저 너머 바깥세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천지가 아파트였다. 유럽의 아파트는 도시 변두리에 하층민 혹은 이민자들이 집단으로 사는 곳이었다. 그들에게 아파트는 도시문제가 되어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아파트는 푸른 눈의 외국의 눈에 새로운 세상이었다. 대한민국은 아파트를 통해 주택 문화를 새로운 각도에서 진화시켰다.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지어진 아파트 성장은 그 역사가 비록 짧음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위생적이고 아름다운 구조물로 발전했다. 단지 내 조경 시설은 자연을 담아냈다. 각종 가구와 가전제품은 아파트 구조 변화에 걸맞게 디자인됐다. 지역의 생산·소비 생태계는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K-주택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식 아파트 문화는 세계로 눈을 돌렸다. 미국을 비롯해 몽골과 아랍,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한국의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아파트 관리 문화도 수출되어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아이템이 될 것이다. 아파트 문화는 한국을 넘어 세계 주거문화를 선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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