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석(전남대학교 사학과 강사)

 

서금석 전남대학교 사학과 강사

참칭(僭稱) 정권의 몰락과 국민 주권 시대의 개봉박두! 참칭은 요즘에 쓰는 말이 아니다. 전근대 왕정에서 반란이나 역모를 일컫는 말이다. 분열과 혐오와 혼란을 조장하고 스스로 왕이라고 칭한 것을 참칭이라고 했다. 그 시대의 용어를 빌리자면 역적이다.

왕정(王政)을 꿈꿨을까? 비상계엄이라는 발상이 가능했던 것은 일찍이 선거판에서 자신의 손바닥에 썼던 ‘王’ 글자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작년 12월 3일 한밤중에 주인인 국민에게 총을 들어 참칭했던 정권, 사납게 비상계엄과 포고령을 선포하더니 군사를 동원해 국회를 짓밟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삼권분립조차 안중에 없었다.

탄핵당한 대통령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재판소에서 "나는 계몽됐다"고 해서 주목받았단다. 블랙코미디 같은 일이 지금 시대에 벌어졌다. 누가 누구를 계몽시키고, 또 누가 계몽되었다는 것인가? 이런 말조차 주목을 받다니 웃긴 일이다. 계몽이 뭔지나 알고나 있는지 궁금했다. ‘계몽(啓蒙)’의 한자 풀이로만 보자면, ‘덥혀 있는 것을 열어젖히는 것’이 된다. 요컨대, 무지와 무식을 탈피한 후 지식 문명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계몽됐다"고 하면, 누가 누구를 무식하게 봤다는 것이다. 한밤 중 비상계엄이 국민을 계몽시키기 위한 것이었나? 이것은 국민을 무지하고 무식하게 여겼다는 얘기이다. 이 무슨 해괴망측하고 허무맹랑한가? 지금이 18세기인가? 국민이 그들의 발아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발상이다. 계엄의 글자를 계몽으로 읽었다고 한다면, 그나마 참칭의 죄에서 눈곱만치라도 참작이나 하겠다.

또 "비상계엄은 경고성이다"라고 했단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대한민국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쳐들어갔다. 그럼 살인미수와 같은 범죄 행위도 ‘경고성’으로 둔갑시켜 변명해도 된다. 탄핵당한 대통령이 법률가라고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조목조목 뻔뻔하기 짝이 없다. 듣고 있자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계엄령을 선포해 놓고, ‘계몽’이니 ‘경고’니 하는 것을 보니, 위·아래가 있는 신분제나 심판제와 같은 전근대 위계질서 사회로 본 모양이다.

습관적인 반말과 거친 몸동작을 익숙히 봐왔다. 그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명령에 따랐던 부하 장군들 탓으로만 돌렸다. ‘인원’입네, ‘요원’입네, ‘의원’입네 하며, 온갖 말장난으로 그나마 3년 대통령의 위신조차 팽개쳤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그의 안간힘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없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지금의 평안북도 영변까지 도망쳤다. 그에게 세 갈래 길이 있었다. 북쪽 강계로 가서 험준한 산맥을 이용해 게릴라전을 펼칠 것인가? 아니면, 함흥으로 가서 병력을 기다렸다가 반격할 것인가? 또 의주로 가서 여차하면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갈 방도를 찾고 있었다. "나는 반드시 압록강을 건널 것이다." 살고 싶어 안간힘 쓰는 선조의 말이다. 2025년 겨울, 계엄 실패로 부하들을 버리고 혼자 살겠다는 그의 모습에서 임진왜란 당시 도망치는 선조가 오버랩된다.

"진정한 장수란 백성을 지키는 방패가 돼야 한다." 영화 대사다. 이순신 장군은 노량에서 전사했다. 퇴각하는 왜군을 굳이 막아 격퇴하고자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다시는 조선을 넘보지 못하게 아예 싹을 잘라버리려는 의지였다.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그랬고, 고려 강감찬의 귀주대첩도 그랬다. ‘王’ 자를 쓰고 집권하고도 모자라, 비상계엄을 선포해 헌법 질서를 유린한 것에 국민이 용서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면 안 된다. 싹을 뽑아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1조의 내용이다.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이 국가이다. 국민이 위임해준 권력은 국민이 도로 회수할 수 있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를 짓밟은 12·3 비상계엄은 그래서 내란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그들을 계몽시켜야 하고 또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국민을 상대로 참칭하지 말라."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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