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는 조선 팔도에서 끊임없이 일어난 수많은 소요를 백성 편에 서서 해결헤준 것이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난도(亂徒)들의 행패일 뿐, 백성을 어질게 다스릴 어떤 대책도 없었다. 왕권을 뒷받침해주는 유림 세계 또한 사대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았다. 신분질서만이 떠받치는 세상의 기둥이었다.

"천도(天道)란 하늘의 길이고, 바로 군주만이 가는 길이다. 그런데 일개 비도 무리가 천도를 대신한다? 그것들이 주장하는 바, 민이 곧 하늘이다고? 그래서 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든다? 에라이 근본없는 호로 새끼들, 신분제가 없으면 세상의 질서가 어떻게 잡히겠느냐. 머슴이 주인 위에 올라서고, 무식한 하인이 어른행세 할 적시면, 하인이나 머슴놈의 새끼가 주인장의 어여쁜 딸이나 마누라를 올라타도 괜찮다는 말이 된다는 것 아니더냐. 어른 상투를 잡아 떼기창을 쳐도 된다는 것 아니더냐. 그렇게 막나가도 이의 제기 없이 양해하고 묵인해야 된다고? 이런 막장 세상이 세상 어느 천지에 있다더냐. 금수의 세계를 살자는 것이 그자들의 수작아니던가."

전봉준은 이런 그들의 분노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도저히 깨우칠 인간들이 아니었다.

"식자층이란 자들이 백성을 깨우치지 않고 무지랭이로 계속 방치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소이다. 백성은 단순히 일만 하는 하인으로 남으라 하고, 글 배우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소. 지필묵은 그들의 독점물인 양 차지하고, 지필묵이 귀하니 백성들이 종이를 살 수 있나, 붓을 살 수가 있나, 붓과 벼루가 비능률적이어서 대체 철필 같은 것을 개발해야 하는디 그럴 생각도, 기회도 주지 않고, 그저 부려만 먹고 있소. 종이 또한 민중이 쓸 만큼 보급되어야 하는디 극히 제한된 것만 생산하고 있소. 그러므로 이것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오. 우리가 세상을 평정하면 전 백성이 글을 배우고, 한문 달달 외워서 선비연하는 풍토를 뒤집어버릴 것이오."

오권선이 고개를 저었다.

"지배층은 결단코 백성들의 글 배우는 것, 깨우치는 것을 막을 것이외다. 그렇게 해서 전체 구할의 백성들을 그들의 노동력으로 사용할 것이오. 이렇게 해서 구할 이상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으니 그들은 날마다 띵까띵까 기생 끼고 미주(美酒)에 취해 흐느적거리고, 그것을 풍류라고 유세를 떨게 되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수확한 곡식 세금으로 털리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력까지 착취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불공평한 세상입니까."

이화진이 나섰다.

"이렇게 깨우치자고 나서니 지배층은 우리를 난동자가 지랄을 하고 있다고 몸서리치고 있고만이오. 그래서 동학 무리가 보이는 족족 찔러죽이고, 찢어죽이고, 불꼬실라 죽여야 한다고 방방 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봉준은 이론 무장을 강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동학군사가 분기탱천하려면 척결의 대상이 보다 분명해야 하고 용의주도해야 한다. 그가 다시 힘주어 말했다.

"뿌리깊은 양반주의, 선민의식은 지들만이 세상의 주체라는 것이고, 그 핵심은 신분사회 강화라는 것이니, 우리가 싸우면서 배워야 할 것이오. 저들의 권력은 사실은 그림자 같은 허상이오. 백성들이 두려워하니 허상이 춤을 추는 것이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비겁자들이오. 우리가 깨우치지 못한 것을 무기로 마음놓고 비겁자들이 횡행하는 것이니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싸우면서 배웁시다."

전봉준의 웅변은 군사 조직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불만을 가지고 모여들었지만 차츰 봉기의 정신이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양호초토사 홍계훈은 이론투쟁을 병행하는 전봉준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무리들은 사상적으로 무장하기 전에 초기에 완전 박살내버려야 한다. 그가 전 부대에게 남진 명령을 내렸다. 홍계훈의 남진 병력은 3대(隊)의 경군과 함께 감영군, 강화군, 보부상군을 포함에 수천을 헤아렸다.

이들의 정보를 밀대를 통해 취득한 비서 송희옥과 정백현이 급히 전봉준을 찾았다.

"장군, 영광 방면으로 중앙군과 감영군, 강화군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병력을 증강해 일합을 겨루자는 기세가 등등합니다. 보복전으로 동학농민군을 섬멸하겠다는 작전인 것 같습니다."

소식을 듣고 영광의 접주 오하영·오시영·최시철·오정운·최재형·양경수·오태숙·서우순·최준숙·박인지 등 영광의 지도자들이 지휘부로 급히 달려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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