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에
최승호
누에들은 은수자(隱修者)다. 자승자박의 흰 동굴로 들어가 문을 닫고 조용히 몸을 감춘다. 혼자 웅크린 번데기의 시간에 존재의 변모는 시작된다. 세포들이 다시 배열되고 없었던 날개가 창조된다. 이 신비로운 변모가 꿈의 힘 없이 가능했을까. 어느 날 해맑은 아침의 얼굴이 동굴을 열고 나온다. 회저(壞疽)처럼 고통스러웠던 연금술의 긴 밤을 지나 비로소 하늘 백성의 날갯짓이 시작되는 것이다. 밖에서 구멍을 뚫어주는 누에의 왕은 없다. 누에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벽을 뚫어야 하며 안쪽에서 뚫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은수자(隱修者): 숨어서 도를 닦는 사람.
*회저(壞疽): ‘괴저’의 비표준어로, 살점이 문드러져 떨어져 나가는 병을 일컬음.
이 시를 읽을 때, 데미안의 말이 떠올랐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데미안 中, 헤르만헤세)
누에가 스스로 고치를 뚫고 나와 비로소 날갯짓을 하며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과정이,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며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고 신에게로 날아간다는 데미안의 말과 같아서이다.
누에는 자기의 줄로 자기 몸을 옭아 묶어 고치로 들어가 번데기의 시간을 거치며 날개를 얻을 날을 꿈꾼다. 고치의 벽이 뚫리고 누에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게 되는 것은 외부의 조력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얻고자 하는 누에의 꿈과 고치의 벽을 뚫고자 하는 누에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 누에의 간절한 꿈이 있었기에, 비로소 고치의 벽을 뚫고 나가, 해맑은 아침 나비의 날갯짓이 시작된다.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3 수험생들의 간절한 꿈과 힘찬 날갯짓을 열렬히 응원한다.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