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홍학관1921’시민모임 주도
오늘의 광주 정신이 있게 한 터전 주목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시민사회운동의 중심이었던 ‘흥학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2021년 10월 5일 전일빌딩245 시민갤러리에서 ‘흥학관, 광주사람들’ 기념전시전이 개최되고 있다./광주 동구청 제공

1921년 일제 강점기 당시 광주 청년운동의 요람으로 사용된 광주 동구 광산동 100번지 일대에 있던 홍학관 사적기 표석 제막식이 5일 오후 홍학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홍학관1921’시민모임 주도로 열리는 이날 행사는 1부 제막식·다과에 이어 2부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홍학관 사적기를 새긴 표석은 이범식 회장이 사비를 출연해 건립됐다.

홍학관은 1921년 4월2일 광주의 부호 최명구(1860∼1924) 선생이 회갑을 맞아 1만여 원의 사재를 들여 만든 단층 목조 건물이다. 광주 청년들이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사회운동을 전개한 오늘의 광주 정신이 있게 한 터전이었다.

흥학관이 건립될 때 전남지사 등 300여명의 시민이 참석해 큰 성황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200여명이 들어가는 강당과 몇 개의 사무실을 갖춘 홍학관에서는 송진후·안재흥·박정환 등의 초청 강연회가 열렸고 각종 사회단체의 집회와 웅변대회, 음악·연극이 공연되고 영화가 상영됐다. 밤에는 흥학관에서 야학이 열렸으며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지도와 전국 확대를 논의한 학생독립운동의 산실이 됐다.

홍학관은 ▲광주보통학교 출신들로 광주 3·1운동의 주역이 된 최한영 등 신문잡이종람소 회원 ▲광주최초의 비밀결사였던 왕재일, 장재성 등 성진회 회원 ▲신간회 광주지회장 최흥종 ▲전남청년연맹집행위원장 장석천 ▲광주노동공제회 회장 서정희 ▲계유구락부를 이끈 최원순 등의 주 무대였다.

또 흥학관은 현덕신, 김필례, 김함라, 신경애, 김홍은 등 광주를 대표하는 여성들의 주요 활동 공간이기도 했다.

흥학관은 일제 강점기 말엽 광주부청(현 광주시청)에 넘어간 후 광주부 의회 건물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9년 계림동 경양방죽 터로 시청사가 이전하면서 건물은 완전 철거됐다.

/박재일 기자 jip@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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