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 근무 오명

신안군, 최근 5년간 80여명 이탈
15명은 임용 한달도 채우지 못해
기간제 채용 158건 중 63건 재공고
60·70대 주민 필수 공공업무 대체

섬 보유 주변 지자체도 비슷한 상황
"처우개선 없으면 인력난 반복" 지적
특수지 4만 원·초임 200만원 불과
제도 손질 없인 인력난 악순환 반복

 

배편 결항으로 인한 출퇴근 차질, 오래된 관사와 빈약한 의료·문화 인프라, 특수지 수당 월 4만 원 등 낮은 보상이 겹치며 ‘버티는 행정’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신안군 하의면사무소 직원 3명이 섬 근무 여건과 인력 이탈 현실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조태훈 기자 thc@namdonews.com

전남 신안군의 공직 이탈이 상시화되고 있다. 배편에 묶인 출퇴근, 낡은 관사, 빈약한 의료·문화 인프라에 저보수와 미흡한 특수지 보상이 겹치며 ‘버티는 행정’이 한계에 다다랐다. 이탈의 그늘은 신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섬으로 이뤄진 주변 지자체에서도 같은 현상이 잇따르며 섬 행정의 지속 가능성을 놓고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9일 신안군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군 전출·사직자는 80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15명은 임용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행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군은 올해만 158건의 기간제 채용 공고를 냈지만, 이 중 63건이 지원자 부족으로 재공고를 반복했다. 인력이 부족한 면에선 60~70대 주민이 환경미화·제초·행정보조 등 공공업무를 임시로 떠맡는 실정이다.

이탈의 배경은 분명하다. 섬을 오가며 근무하는 공무원은 약 180명으로 추산되지만, 특수지 근무수당은 월 4만 원에 불과하다. 9급 초임은 200만 원대 수준으로, 최저임금(206만 원)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주소지가 섬이 아니면 도서민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여객선·차량 운임이 고스란히 본인 부담이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두 집 살림’까지 겹치며 생활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전남 신안 하의면사무소 전경. /조태훈 기자 thc@namdonews.com

생활 인프라도 취약하다. 신안군 1천28개 섬 중 6개 면은 반드시 배를 타야 출퇴근할 수 있다. 기상 악화 땐 결항이 잦아 출장·복귀가 막히고, 응급 상황에선 육지 병원까지 몇 시간이 걸린다. 관사 대부분은 오래된 민박 개조 형태로, 여름엔 벌레가 들끓고 장마철엔 곰팡내가 진동한다. 수압·난방 문제까지 겹쳐 기본 생활조차 불편하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이탈이 누적되며 남은 인력의 피로도는 임계점에 이르렀다. 숙련 인력이 빠지면 복지·농업·건설 민원이 신입 직원 한 명에게 쏠리고, 겨우 업무를 익힐 즈음 또 다른 이탈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면 단위 행정은 한 사람만 비어도 흔들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주민 불편으로 돌아간다.

이 같은 현상은 신안만의 일이 아니다. 완도군에서도 같은 기간 96명이 공직을 떠났고, 절반 가까이가 근무 3년을 채우지 못했다. 현장에선 섬 근무를 ‘유배지 근무’라 부르는 냉소까지 퍼지고 있다.

정치권과 공무원 노조는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최고위원은 "섬 지역 공무원 이탈은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행정서비스 붕괴와 지역 소멸의 전조"라며 보수체계 개선과 특수지 수당 인상을 요구했다. 공무원노조는 중앙 정부에 특수지 수당 현실화, 교통비 실비 지원, 법령 정비 등을 촉구했다. 지자체에는 장기근속 인센티브(특별승진·가점)와 현대화된 통합관사, 심리상담 프로그램 도입을 제안했다.

전남지역 공무원 노조 관계자는 "공무원이 떠난 자리를 임시직으로 메우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며 "섬 근무에 걸맞은 처우와 주거·교통 지원이 병행되지 않으면 인력난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안/박장균 기자 jkjh112@namdonews.com
/조태훈 기자 thc@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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