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지징세(白地徵稅)는 수확이 없는 땅에 세금을 매기거나 납세 의무가 없는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일종의 사기 징세법이다. 백지(白地)는 농사를 지었어도 쭉정이만 남은 땅을 말한다. 백징(白徵)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말하였다. 현장 관리가 아니라 장부상의 기록을 가지고 장난하는 경우가 많아 관리의 농민 착취는 다반사로 이루어졌다.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해 착복하는 것을 하나의 특권처럼 여기는 것이 지방 관리의 행태요. 이것들 쌔래 죽이고 나도 죽어불랍니다."
농민은 분이 나서 울부짖었다.
"그자가 누구렸다?"
"고을의 현감놈이고 하급 관리, 아전놈, 그중 이방·호방놈이지라우. 우리 고을에서만 열댓 건이나 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백징과 백지징세가 수천 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뭄 피해가 극심한 고종 대에 성행했으며, 그중 곡창지대인 전라도 땅에서 주로 자행되었다.
"건너 마을 춘만이 아부지는 억울하다고 대들었다가 사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맞아부렀소. 시방 골병들어 사경을 헤매고 있소."
"민원 처리는 한꺼번에 할 것이요. 다음 사람 들어와서 민원을 말하시오."
늙수그레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하소연했다.
"아들이 죽은 지 폴새 오륙년 되는 감만이오. 그란디 아들을 군적(軍籍)에 올려놓고 세금을 매기고 있소. 억울하여서 못 내겠다고 버텼더니 이자까지 붙여서 거둬들인다고 하고, 안내면 감옥으로 보낸다고 하요."
바로 백골징포(白骨徵布)라는 것이었다. 조선조의 군역법에는 15세부터 60세까지 군역에 응하여 만 60세가 되면 물고자(物故者), 즉 사망자와 함께 면역(免役)하게 되어 있었다. 굳이 말한다면 법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구할 이상이 농업인 땅에서 농사지어 세금으로 뺏기고, 또 60세까지 군역에 동원된다. 이런 때 이방·호방·병방 따위 아전과 서리배(胥吏輩)가 농간하여 군역을 마친 자의 연령을 낮추어놓고 강년채(降年債)라는 것을 징수하는가 하면, 사망자에 대해서는 체납을 구실 삼아 물고채(物故債)로 살아있는 가족에게 백골 징세를 매겼다.
"아들이 병을 얻어서 죽은 것도 서러운디, 거기다 백골세까지 매겨요? 개쌍놈의 나라, 뒤집어 엎어 부러 얄랑만이오. 나도 도끼 들고 나서겠소."
이응서는 발고(發告) 내용을 하나하나 장부에 받아 적는 봉덕을 보며 야릇한 절망감을 느꼈다. 양반 자제에게는 군역의 의무가 없었다. 그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러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야릇한 절망에 젖었다. 하늘은 푸르고 평화롭지만 지상에는 불평등이 썩은 물처럼 고여있다. 그래서 혁명이 필요한 것인가.
민원 면담을 마친 봉덕이 덕대 큰 장정 넷을 불러냈다.
"군수와 현감과 말단 관리, 아전을 모두 붙잡아와라."
이들이 나간 한 식경이 지나서 몸이 묶인 현청 관리들이 붙잡혀왔다. 이응서가 나서서 물었다.
"군수·현감이 안 보이는데?"
장정을 이끈 조장이 나섰다.
"그자들이 그새 쥐새끼처럼 튀어부렀소."
"하급자들을 잡아서 뭘 하자는 건가."
"아니올시다. 잔챙이가 더 지랄하지요. 말단 관리임에도 불구하고 윗사람보다 더 행세하거나 갑질을 하는 사례가 많다니께요."
"왜 그런가."
"조그만 권력으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이지요. 하급 관리일수록 백성을 함부로 밟아도 꼼짝 못 한다는 권위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때아닌 권력 맛을 보니 우쭐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여 방망이를 마구 휘두릅니다. 그 재미에 사는 것처럼 밀입니다. 그래서 상관이 뭐라고 안 해도 한수 더 떠서 지랄발광합니다. 저것들부터 설거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