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중 민중의 원성이 높은 이방부터 조졌다.
"이방 나오너라."
젊은 나졸과 서리(胥吏)·이속(吏屬)이 끌려 나오고, 그들의 댓방인 이방이 끌려 나왔다. 이방은 떡이 되도록 매타작부터 받았다.
"이방 너는 육방(六房) 가운데 수령을 보좌하면서 백성의 민심을 살펴야 하는디, 인사 실무를 맡은 권한을 남용하여서 백성들을 어지간히도 괴롭혔다. 얍삽하고 간사한 생김새대로 백성을 쥐어짠 것을 알고 있도다. 수령에게 바친 것이 얼마냐? 시방 수령을 어디다 숨겼느냐?"
이방이 실눈을 뜨고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코밑에 붙어있는 빈약한 팔자수염이 더욱 간사스러워 보였다. 그가 위엄을 갖추고 소리쳤다.
"백주 대낮에 이것이 무슨 짓이냐. 너그들 세상이라고 집강소를 차려? 어디서 배운 느자구들이여? 지방 관서가 핫바지냐? 종묘사직을 능멸하는 나쁜 놈들! 내 이르는디, 눈 내리깔고 고요히 물렀거라. 안글면 형방의 칼이 너그들 배때지를 갈라놓을 것이다."
"저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고만! 시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저놈을 매우 쳐라."
봉덕이 명하자 건장한 장졸 셋이 나서서 늑신하게 이방을 팼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호방이 지레 겁을 먹고 말했다.
"사실은 형방이 백성들을 잘못 다루었소. 우덜은 구경만 하였소."
벌써 이간질이 나오고 있었다. 이럴 때는 각자도생이다. 호방(戶房)은 인구, 호적, 세금, 부역 등 호구(戶口)와 관련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은밀하게 뒷거래를 통해 뒷돈을 챙기는 이른바 사바사바가 많은 부서여서 다른 어떤 부서보다 민원(民怨)이 극심하였다. 백성의 거주지, 성비, 신분, 나이 등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으니 징병, 관급 공사 노동력 확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백성에게 부과되는 세금(전세, 군포 등)과 각종 부역(노동력 징발)을 관리하고, 징수·집행을 담당했으니 온갖 부정이 성행하였다. 호방은 이렇게 육방 중 주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행정 실무를 담당했으므로 백성들의 원성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저 새끼, 죽여부러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당한 것이 아니오. 애먼 사람을 군대에 보내부렀소."
한 농민이 분노를 토해냈다.
"맞소. 악질 호방이요. 집에 없는 사람을 내세워서 세금 매기고, 남아있는 사람을 군역에 보냈소."
"나는 병방이 시킨 일만 했소. 그리고 사람 팬 것은 형방이오. 억울한 일 있으면 병방이나 형방한티 따지쇼."
호방은 변명부터 했다. 두 방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었다.
병방(兵房)은 말 그대로 군사(軍事)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병력 관리, 무기·군수품 관리, 군사 훈련, 향토 방어 등 군사 행정의 실무를 맡았다. 그러나 군사 동원력은 호방이 하는 일이고, 병방은 배정된 인원을 훈련시켜 성을 지키고, 고을의 외곽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탈영병이 많았으나 이는 교관과 지방 방어사 역할이었으므로 병방의 위치는 있으나 마나였다. 그래서 만만한 병방을 앞세우는 것이다.
형방(刑房)은 지방관의 법 집행을 보좌하는데, 수령이 관할 내 범죄 조사 및 범죄인 심문을 할 때 국문(고문)을 담당했다. 지방관이 심문을 할 때, 형방은 사건 기록, 증인 심문, 증거 수집 등 실무와 함께 범죄 혐의자 고문을 맡았다. 조선의 고문 기술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악질적인데, 이런 고문은 형방들이 주로 고안해낸 것들이었다. 호방을 안 죽을 만치 패는데 이응서가 매질을 멈추도록 명했다.
"때리는 것을 멈추어라. 복수는 앙갚음인디, 받은 만큼 되돌려 준다는 것이 결코 옳은 일은 아니다."
장졸 하나가 나섰다.
"도인 났네. 오늘의 범죄를 징치하지 않으면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준다는 거 모르나? 바른 정의가 침묵하면 불의가 용기를 내부린당깨요."
한 아낙네가 나섰다.
"맞소. 저 호방 놈이 내 딸을 건드렸소. 내 딸이 자진 해부렀소. 이런 놈을 내비둬야 할게라우?"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