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민(남도일보 사회부장)

 

고광민 남도일보 사회부장

1980년 중·후반 초등학교 아니 그땐 ‘국민학교’로 칭하던 시절 끼니 때 밥 보단 이상하리 만큼, 부모님을 졸라 짜장면이나 라면 등을 즐겨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기름에 적절히 튀기듯 볶아진 고소하고 달달한 간짜장은 주말 토요일 점심 외식의 최애(?) 단골 메뉴로 기억된다.

하지만, 부모님이 바쁘거나 외식할 수 없을 경우 홀로 라면을 주로 먹곤 했다. 당시, 초교 3~4학년이던 꼬마학생은 석유곤로 위에 물을 부은 양은냄비를 올리고 직접 라면을 조리해 끓여 먹었다. 가스레인지가 보급화돼 일반 가정에도 널리 사용됐지만, 그 꼬마 입 맛엔 왠지 석유곤로에 끓인 라면이 유독 맛깔 났다. 얼마나 간절하게 라면이 먹고 싶었으면 곤로 앞에 쪼그려 앉아 주황색 라면 비닐봉지를 뜯어 적당히 물을 맞춘 냄비에 스프와 면을 넣고 조리까지 했을까? 라는 생각이 어렴풋 든다. 그 시절 가장 많이 즐겨찾고 먹었던 라면이 바로 36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명 ‘우지라면’이다.

초교시절부터 참 추억도 깊고, 많이 먹었던 라면이다.

80년대 라면은 주황색 봉지에 파란색으로 쓰여진 상품명 ‘삼양라면’이 국룰이었다. 라면가격이 100원으로 기억되고, 늘 주방 윗 서랍 한 켠에 3~4봉지씩 쌓아두면서 먹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시절 삼양라면은 소고기기름인 우지를 이용해 면을 튀겼고, 소고기 맛을 첨가한 가루스프가 국물맛의 풍미를 한층 끌어 올렸다. 우지로 튀겨낸 탓인지 면은 굉장히 고소했고, 실제 라면국물 위에 잔거품처럼 기름이 맛스럽게 둥둥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도 버릇이지만 라면을 먹을 땐 항상 냄비 뚜껑이 제 역할을 한다. 뚜껑에 라면을 올려 놓고 먹지 않으면 그 맛이 살지 않는다. 그 때 버릇처럼 지금까지도 그릇보단 뚜껑을 애용하고 있다.

삼양라면 인기는 당시 판매량에서도 알 수 있다. 80년대 초·중반까지 시장점유율이 압도적 1위였다. 여타 경쟁사인 농심과 오뚜기 등의 차세대 주자들이 치고 올라 왔지만, 삼양라면의 ‘브랜드 파워’엔 견주질 못했다.

하지만, 삼양라면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언론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공업용 소고기기름으로 면을 튀겼다는 ‘우지파동’이 세상을 뒤흔들어 버린다. 지난 1989년 11월 검찰에 삼양식품이 공업용 우지로 면을 튀긴다는 익명의 투서가 그 시발점이다. 당시로선 상당한 충격적 사건이었다. 삼양식품이 마치 수년 동안 식용으로 쓸 수 없는 공업용 소기름을 주원료로 라면을 제조·공급했다는 기사와 뉴스가 쏟아졌다.

그 소식은 먹거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국민정서를 제대로 건드려 분노케 했고, 그 선봉장에 검찰과 언론 등이 앞장섰다.

그 결과 우지로 라면을 제조·공급한 삼양식품 등 여타 회사관계자들이 검찰에 구속되고, 일부 업체는 부도가 나거나 도산 직전까지 내 몰려야 했다.

이후 삼양식품은 1심 재판서 유죄를 받았지만 2심은 무죄로 뒤집히고 결국, 대법원서 8년여 간 지리한 법정 투쟁 끝에 무죄를 확정 지었다.

삼양식품이 사용한 우지는 인체에도 무해하다는 것이 대법의 최종 판단이었다.

삼양식품은 뒤늦게 무죄를 받았지만 이미 소비자 신뢰는 한참 추락한 뒤였다. 옛 명성을 되돌리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 흘러 버렸다.

검찰 과잉 수사와 언론들의 일방적 물어 뜯기식 보도행태가 건실한 기업을 망조(?)들게 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되고, 훗날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회자 되고 있다.

초교시절 한 켠의 추억으로 남아 있던 우지라면이 이달초 36년 만에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소기름을 사용한 라면이 지난 억울했던 과거 아픔을 뒤로하고, 새 도약을 위해 전격 출시돼 과거 소비자의 진한 향수와 입맛을 사로잡겠다는 각오다.

개인적으로 과거 초교생이던 입맛이 수십년을 거슬러 돌아올지 미지수지만, 굉장히 반가운 건 사실이다. 단순한 과거 회귀로의 맛이 아니라 그 당시 추억까지 소환해 또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 완전히 새로운 것보다 오래된 것의 따뜻함에 위안을 얻고 힐링하게 된다. 그 소재가 라면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단순한 회귀가 아닌 ‘명예 복원’을 내세운 우지라면의 명운을 지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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