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민(남도일보 경제부장)

전기자동차 공포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서 고급 수입전기차가 폭발하면서 주변차량 140여대에 전소 피해를 주고, 주민 120여명이 긴급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충남 금산군에서도 충전 중이던 기아 전기차에서 불이 나는 등 잇단 화재로 ‘포비아(공포증)’ 현상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전기차는 순식간에 불이 타 오르고, 진화가 잘 되지 않는 배터리 특성 때문에 공포감이 더하다.
화재사고 여파는 자연스레 전기차를 멀리하는 집단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 화재사고를 계기로 각 아파트 단지에선 지하주차장 사용을 막는 사례가 잇따르고, 일부 대형상가에선 지하주차를 막는 곳까지 하나·둘 생겨 나고 있다. 심지어, 전기차주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주는 등 입주민들간 갈등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일부 아파트는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이전하는 작업까지 착수할 정도다.
화재여파는 전기차량 판매에도 직결되고 있다. 판매 영업점은 전기차량 구매를 취소하려는 문의가 늘고, 중고차시장은 매물이 쏟아지는 등 비상이 걸렸다. 그야말로 전기차 시대의 가장 큰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정보를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공개토록 했다. 이에, 지난 12일 기아·BMW, 13일 현대차·메르세데스벤츠까지 각각 배터리 정보를 공개했다. 현대차와 벤츠는 무상 점검 지원도 약속했다. 여기에, 정부는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스프링쿨러 및 소방시설에 대해 긴급점검을 지시했다.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다고해서 화재사고까지 막을 순 없다. 우선, 전기차 화재 원인을 확실히 규명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화재 원인이 분석되면 이에 적절한 ‘과충전’ 방지 등 구체적이고 과학적 예방책이 필요하다.
또, 현재 전기차 화재공포를 잠재우기 위해선 차량에 장착된 배터리 ‘열폭주(더 많은 열을 만드는 에너지)’ 현상을 막아야 한다. 일단, 전기차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온도가 맥시멈 1천도까지 치솟아 일반소화기론 진압이 수월치 않다. 따라서, 화재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고, 발 빠른 진압 등 피해 최소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기차 화재사고 대응 안일함은 정부의 현 정책방향과 무관치 않다. 정부는 전기차의 친환경에 대한 대대적 홍보와 관심에 불을 지펴 보조금 등 보급 확대 정책에만 치중했다. 안전 인프라 구축에 대해선 소홀하고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에 힘입어 전기차 누적대수는 올 상반기 기준 60만대를 넘어선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기차 화재나 배터리 안전에 대한 대비책은 허술하기만 하다.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시 화재 대응을 위한 소방시설 규정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전기차 화재 발생으로 소비자들의 구매시점이 늦춰지는 등 당분간 수요 둔화가 예상된다. 전기차·배터리 회사 등 관련업체들도 이 같은 흐름을 감안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다. 정부와 전기차 업계는 하루빨리 소비자들이 지나친 불안을 걷어 낼 수 있도록 꼼꼼하고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허술하고 어설픈 대책은 소비자 불안을 해소할 수 없고, 전기차시장 위축과 경쟁력 약화만 부채질 할 뿐이다.
무엇보다, 국민정서에 팽배해진 불안감을 불식시키고, 관련 배터리산업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지나친 과잉 대응으로 ‘전기차 포비아 현상’을 애써 조장하거나 배터리 및 전기차 산업을 가로 막아선 안된다.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및 친환경문제를 위해서라도 전기차시대로의 전환은 미래로 가야 할 길이자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이다.
노사민정 대타협으로 탄생한 대표적 광주형 일자리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지난달 15일부터 전기차인 ‘캐스퍼EV’을 양산하고 있다. 캐스퍼EV 양산에 이번 전기차화재 이슈는 큰 악재가 아닐 수 없다. GGM 미래 발전은 캐스퍼EV성공의 필요조건이며 이를 위해선 정부 측 특단의 근본책 마련이 절실하다.
배터리 화재 공포로 전반적인 전기차산업이 기로에 서 있다. 과학기술계·학계·자동차 및 배터리업계 등이 실질적 전기차 화재 방지책과 지속 가능한 전기차산업 성장을 위해 머릴 맞대고 ‘현실적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