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훈 정치부장

광주·전남 지역민들은 한밤 중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세밑을 보냈고 새해를 맞았다.
12·3 비상계엄사태는 1980년 5월 비상계엄의 집단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는 광주·전남 지역민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을 줬다. 이어 연말 마지막 휴일 아침에 터진 제주항공 여객기 무안국제공항 추락 참사는 커다란 슬픔과 상처를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 소추는 물론 내란 혐의도 인정하지 않고 사실상 사법부와 싸움을 벌일 태세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가 본격화 되고 있지만 점차 드러나는 상황을 보면 안전무관심이 피해를 키웠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두 사건과 비슷한 참사를 우리는 잊혀질 만하면 겪고 있다. 원인도 대부분 비슷하고 사고 이후 처리도 거의 판박이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법부도 단죄하지 않고 정치권도 사면 복권에 동조했다. 그때 그때 소나기만 피해가는 모양새다.
12·3 비상계엄을 친위쿠데타로 불린다. 쿠데타는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말이 있다.
진보정책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1950년 이후 현재(2024년 12월 6일)까지 전세계에서 벌어진 쿠데타는 490건이다. 1950년대~1990년대 초반까지 빈번하게 발생하다 냉전 종식(1991년) 이후 급격히 감소했다. 2018년은 처음으로 전세계에서 단 한건의 쿠데타도 일어나지 않은 해로 기록됐다. 2015년~2019년 동안 단 6건의 쿠데타만 일어나 점차 ‘0’으로 수렴되는 추세다. 2020년대에는 18건 중 16건이 저개발국가에서 일어났고 이른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에서 쿠데타 경험은 각 1건씩이었다.
지난 74년간 쿠데타는 평균 성공 50%·실패 50%로 팽팽했지만 2020년대에 들어와서는 성공률이 61%로 크게 높아졌다. 대한민국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성공), 1972년 유신쿠데타(성공), 1979년 12·12군사쿠데타(성공, 1980년 5·17계엄확대는 12·12쿠데타에 포함), 그리고 2024년 12·3 비상계엄(실패)을 친위쿠데타로 정의한다면 등 총 4건이다.
5·16군사쿠데타는 한국 현대사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어진 10월 유신쿠데타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헌정 중단 사태이자 친위 쿠데타로 꼽힌다.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발전이라는 양면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정희는 10·26 사건 때 이미 죽었기 때문에 공소권이 없었고, 반란죄로 처벌을 하지 못했다.
1979년 12·12일 군사 반란을 주도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후손들과 함께 눈감기 직전까지 호사를 누리다 생을 마감했다. 12·12 당시 전두환의 비서실장 허화평, 전두환의 최측근 정호용, 제5공화국 황태자 박철언 등 당시 군사 반란에 동참했던 인사들 역시 사법적 단죄는 잠시였지만 사면 복권돼 영화를 누렸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참사 당시 초동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해경 지휘부는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당시 선장은 무기징역, 현장에 있으면서 부실한 구조로 승객들을 숨지게 한 123정장은 징역 3년이 확정되었을 뿐이다.
2022년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 재판 결과도 허무하다. 용산구청장 무죄, 용산경찰서장 3년 금고형 뿐이다. 재판부는 사고 예견과 안전관리계획 수립의 의무를 피고인들에게 물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족들은 무죄 판결에 크게 항의하며,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처럼 쿠데타가 실패했던 성공했던 관련자에 대해 단죄하지 않았고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한 참사에도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던 것이다. 사건 발생 당시에만 분노와 슬픔이 더할 나위 없게 치솟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야무야 소리 소문 없이 묻혀졌다.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1년 후 국민 달라져…무소속도 다 찍어줘"라고 한 발언을 깊게 되새겨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검찰총장을 지낸 윤 대통령도 사법부의 판단을 거부하고 버티고 있다. 단죄하지 않고 시간만 흘려보낸다면 또 다시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위태롭게 하는 일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도 인재로 드러나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 단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