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학농민군의 절도있는 행군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은 성과물이었다. 부족한 무기를 대신하기 위하여 십리 길 구보와 달리기, 제식훈련, 백병전에 대비한 육박전 훈련으로 체력을 단련했다. 구식총과 죽창 정도로는 화력 뛰어난 중앙군과 지방수성군을 이기기 힘든 구조였기 때문에 임전불퇴의 정신무장과 단단한 체력으로 전투력을 배가시켜는 것이었다.
정식 군대식으로 보병의 표준을 채택하여 진군하니 농민군의 사기가 충만했다. 드디어 자신들도 군인이라는 의식이 가슴을 지배해 뿌듯해지는 것이었다. 흐트러지기 쉬운 농민군을 한덩어리로 묶는 길은 그것이 가장 유효한 힘이 되었다. 이런 행군의 모습을 지켜보며 전봉준이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장하도다. 영광·함평·무안 동학군의 위세라면 천하를 얻을 것 같다."
함평현아(咸平縣衙)가 보이는 언덕에 이르자 이화진, 장경삼, 장옥삼, 장공삼, 임종량, 박춘서, 정평오, 김시환, 윤찬진, 김경문, 박경중이 동학군을 인솔해온 전봉준 대장을 맞았다. 이화진이 대오를 정지시킨 다음 전봉준 앞으로 나아갔다.
"장군, 어서 오시오. 함평 천지를 접수하면 천하를 얻는 것이니 우리가 접수하것습니다. 이곳에서 군사와 군량을 확보하는 것인즉, 동학군의 위세는 조선의 하늘을 진동시킬 것이오이다."
과장이 있었지만, 그만큼 사기충천해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여러 지휘부가 하나로 뭉쳐서 대응을 하니 보기에 대단히 좋소. 이런 태세로 나간다면 무엇인들 못얻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여러분을 믿고 여기서 떠나겠소."
그가 말을 돌렸다.
"아니, 우리 군사를 지휘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장수가 많으면 사공 많은 배와 같소. 보아하니 함평과 무안은 믿을 수 있소. 지휘부가 대오를 이끄는디 대단히 모범적이오. 나는 다른 지휘부로 가겠소."
"어디로 가시렵니까."
이상삼이 물었다. 이상삼은 아전 출신 지도자로서 영광과 함평에서 활약하며 이태형의 연락책을 맡고 있었다. 전봉준은 그를 신뢰하고 있었다. 이상삼은 때로 수성장(守城將) 행세를 하며 상대 진영을 교란하는 데 능숙한 기량을 보였다.
"행선지를 말해줄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시오. 다만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필요한 경우, 언제 어느때든 여러분 곁으로 달려오겠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그는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지만, 삼례와 금구 지방으로 가서 비밀리에 동학농민군을 결집시켜 한 순간에 전주성을 공략할 계획이었다.
전봉준이 떠나고, 농민군은 함평현아를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함평 거리로 들어서자 함평현아 수성군들이 농민군의 진로를 막고 총을 마구 쏘아대고 있었다. 수성군은 골목마다 장애물을 설치하고, 그 장애물을 엄폐물 삼아 농민군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수성통장(守城統將) 정만기가 종횡무진 움직이며 수성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족족 쏴부러라!"
그의 발포 명령에 따라 총격을 가해오는데, 이때 농민군들이 쓰러졌다. 그중 두 병사가 죽었다.
"이러다 모두 당하겄습니다. 담 뒤로 넘어가 육박전으로 뽀사불까요?"
이상삼이 외쳤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한두 수성군은 잡을지라도 적을 일망타진할 수 없었다. 이화진이 명했다.
"수성통장 정만기에게 집중 저격해라. 저 자만 잡으면 수성군은 오합지졸이 된다!"
그와 동시에 농민군의 총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재래식 총이라서 사거리에 미치지 못한 곳에 피식 피지직 불똥을 싸고는 사그라졌다.
"총이 개판잉개 총알이 나가들 않구먼!"
총병이 투덜거리는데, 주경로 휘하의 도감봉과 배상옥 휘하의 김석돌이 한달음에 담을 넘어 가 수성군 전영을 진두지휘하는 정만기를 생포했다.
"정만기 수성통장! 부하들에게 총격 멈추라고 명하라!"
도감봉이 정만기의 옆구리에 총을 들이밀고 소리쳤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