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화 과정 속 해조류 구분법 일본과 비슷
우리나라, 일본식 해조류 분류체계 유사 재편
미역으로 분류됐던 다시마, 현재 이름 되찾아
국제질서·헤게모니, 일상적 언어생활도 영향


이번 주제는 전남 도서 지방에서 많이 양식하고 있는 다시마라고 부르는 해조류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땅에도 나무에도 이름이 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토끼’를 토끼라고 부를 필요가 없듯이 ‘다시마’도 꼭 다시마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대상과 이름 간의 관계는 항상 자의적인 것이다. 그래서 시간에 따라 사물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기도 하고, 또 반대로 대상의 이름이 바뀌기도 한다. 이름은 사물의 구분법(classification)이나 분류법(taxonomy)을 반영한다. 그래서 사물의 이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특정 사물을 다른 사물과 구분 짓는 범주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헤게모니는 이탈리아 정치이론가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발전시킨 개념이다. 그람시는 헤게모니를 통해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에 동의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했다. 헤게모니는 국제관계에서는 ‘패권’이라고도 번역되는데, 한때 식민국이었던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일본 제품이나 지식이 더 좋고 멋있어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개념이다. 그런데 너무 일상적이어서 자의적이라는 점조차 자각되지 못하는 대상과 이름 간의 관계가 헤게모니와 관련된다고 하면 너무 무리한 이야기일까?
수 년전 필자는 일본에서 제일 큰 섬인 혼슈 최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현 시모키타군 와키노사와무라에 간 적이 있다. 이곳은 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중 하나이며 위도가 함경북도 청진과 비슷하다. 이곳에서 지역 어민들이 정치망(定置網)에 갇힌 대구를 잡아와 창고의 걸대에 걸어 말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대구를 말리는 모습이 너무 인상 깊어 이 지역의 향지(鄕誌)를 살펴본 적이 있다. 향지에는 어획한 대구가 18세기 후반부터 800㎞ 떨어진 에도(현재 도쿄)까지 운송되어 소비되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사료가 인용되어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메이지(明治) 전기(前期)인 대략 1870년대까지 대구를 大口魚라고 썼다가 이후 鱈(설)로 바꾸어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大口 혹은 夻(화)는 조선식 한자이다. 일본에서는 대구는 ‘타라(たら)’라고 부르고 보통 鱈(설)이라고 쓴다. 그렇다면 어찌된 영문으로 일본에서는 18세기까지 대구라는 한자를 썼을까? 이후 필자는 부경대 김문기 교수의 연구를 접하면서 일본 최북단 어촌에서 大口라는 한자어를 사용하게 된 배경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일본학자는 17세기 후반 이전까지 중국의 지식체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중국 문헌에 쓰인 한자명이 가리키는 사물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조선의 ‘동의보감’이 전파된 이후로는 한류성 어족을 중심으로 조선의 지식체계가 일본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심지어 일본식 한자어가 있었음에도 조선의 한자명이 일본에서 ‘정자(正字)’로 받아들여져 교체되는 현상도 발견된다.
그러나 메이지 시기에 일본에서 근대수산학이 성립하면서, 오히려 일본의 한자명이 중국과 조선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중국과 조선에서도 일본식 한자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 어류 지식을 둘러싼 헤게모니가 중국에서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변한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 발생한 지식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동아시아 지식인에게 당시 중국에서 발생한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또, 19세기 후반 이후로는 일본의 소위 ‘근대적’이라고 간주되는 지식 체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흔히 문명화라고 부르곤 하였다.
다시마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남한에서는 학명으로 Laminaria japonica를 양식하며 다시마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50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다시마와는 다른 것을 다시마라고 지칭하였다. 오히려 분류법이 달랐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다시마라는 명칭은 15세기 말부터 다사마 혹은 한자로 多士麻(다사마) 혹은 塔士麻(탑사마)로 등장하였다. 20세기 초반 일본인의 조사 자료를 보면, 한반도에서 Laminaria japonica는 함경도 지방에서만 산출되었는데 이를 참미역 혹은 참곽이라고 부르고 眞藿이라고 썼다. 조선에서는 현재 우리가 다시마라고 부르는 것을 미역 범주 속에서 분류하였던 것이다. 이뿐 아니라,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지 한반도 사람들은 (현재 다시마속에 포함되는) 살미역, 물미역 등도 미역의 일종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면 다시마는 무엇이었을까? 다시마는 학명으로 Laminaria ochotensis를 지칭하는 어휘로, 현재 지식체계에서는 Laminaria(다시마속)의 일종이다. 일본에서는 다시마를 마콘부(まこんぶ)라고 부르고 眞昆布라고 쓰는 Laminaria japonica의 일종으로 구분한다. 식민지기와 근대화를 겪으며 한반도 사람들의 해조류 구분법이 일본인의 분류법과 유사하게 재편된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다시마라는 부르는 사물은 한때 미역에 속했다가 지금은 다시마가 된 것이다.
또, 과거 우리가 다시마라고 부르던 사물이 이제 다시마의 일종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한반도 사람들이 일본에서 해조류 분류체계와 양식기술 등의 지식체계를 받아들이며 일어난 것이라고 할 때, 국제질서와 헤게모니가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미쳐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오창현(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정리/김우관 기자 kwg@namdonews.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60]다도해 항로 변화 따른 항구도시 목포에 미치는 영향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59]일반인은 잘 모르는 물때지식의 세계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58]기후와 식생, 그리고 섬 문화의 변화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62]신안군의 사회복지서비스 개선책은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63]섬이 갖는 '돌 문화'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64]우리 국경은 섬이 지킨다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65]숭어 이야기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66]파시에 담긴 침탈 역사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 이야기=[67]섬주민 기본소득제의 철학적 의미
